◇'제국' / 안토니오 네그리 등 지음ㆍ윤수종 옮김세계적 지성으로 꼽히는 두 명의 마르크스주의자가 공동 집필한 책 ‘제국’은 현재와 미래의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 있다.
즉 사라져가는 근대를 과도기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전지구적 현상을 의욕적으로 담아내는 새로운 이론이자 철학이다.
안토니오 네그리(67·사진)는 과격한 테러리스트의 두목이라는 혐의로 체포돼 수감된 적이 있으며, 현재도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골수 좌파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에서 들뢰즈, 마키아벨리에서 스피노자를 아우르는 최고의 지성이기도 하다.
공저자인 미국 듀크대 교수 마이클 하트(41) 역시 이탈리아 무정부주의 사상을 미국에 소개하는데 많은 힘을 쏟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이다.
두 사람은 현재와 미래의 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통찰력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들을 설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제국(empire)’과‘대중(multitude)’이다.
이는 ‘제국주의(imperialism)’와‘민중(the mob)’ 혹은 ‘군중(the crowd)’, ‘대중(the mass)’과는 다른 개념이다.
제국은 다국적이고 초국적인 산업적, 금융적 권력들이 전지구적 영토들을 사실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실체이다.
현재 가장 강력한 제국은 미국이지만, 맥도널드나 마이크로소프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등 초국가적 기업이나 단체도 엄연한 제국이다.
우리는 전지구적 메커니즘에 노출돼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주권을 제국에 의해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정적인 현상을 잉태하고 있는 ‘제국’의 시대에 대한 저자들의 시각은 의외로 긍정적이다.
“우리는 제국 안에있으며 동시에 제국에 저항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반대와 가장 생산적인 대안들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수있을 것”이라고 희망찬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자신들의 그 같은 입장이 ‘좌파동지들’의 행동양식과 사상적 흐름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국이 근대 권력의 잔인한 체제를 타파하고, 또한 해방을 향한 잠재력을 증대시킨다”고 강조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저자들은 과거 공산당의 실패한 국제주의가 진화해 ‘전지구적 공동체’로 부활하기를 바라는것 같다.
이들의 이 같은 희망은 부정적인 제국에 대항하는 ‘대중’(multitude)이 있기에 가능하다.
오늘날의 전지구적 상황은,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전지구적으로 행동하는 거대한 노동조합의 결성을 가능케 하고, 이들이 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자본주의적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한국의 풍부한 정치적 전통, 전지구적 경제 회로 안에서의 한국의 위상, 한국의 혁신적인 사회운동 모두는 제국의 복잡성과 또한 대중의 힘과 능력을 말해준다”며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최근의 미국테러 사태와 관련된 전망을 적어 눈길을 끈다.
종종 미국은 군사적 개입을 일방적으로 지휘한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제국의 현존하는 적에 대한 무장 봉쇄와 억압을 명령한다.
이러한 적들은 아주 종종 테러리스트라고 불리는데 그들과의 끝없는 내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예측이었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 책이 철학적이자 역사적이고, 문화적이자 경제적이고, 정치적이자 인류학적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저자들의 의도가 충분히 달성된 책이라고 느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