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佛작가 로맹 가리 소설집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1914~1980ㆍ사진)의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문학동네 발행)가 나왔다.
일찍이 프랑스 6대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 같은 제목으로 출간돼 낯설지 않은 작가이다.
독자들은 표제작 ‘새들은…’을 통해 세상의 끝에서조차 버리지 못하는 ‘희망’이라는 환상을 목도하면서 가슴을 쳤다.
새들은 먼 바다의 섬을 떠나 페루에 와서 죽는다. 상처받고 좌절한 여자가 한 남자 앞에서 새처럼 죽으려 한다.
여자를 물에서 건지면서 희망도 건져 올렸지만 여자는 떠나버렸다. 어쩌면 새들은 세계의 끝 페루에서 희망의 끝을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을 버리지 못해 죽는 건 아닌지.
소설집에 실린 16편의 단편은 작가가 인간의 가슴에 꽂는 날카로운 비수이다.
하인에게 속아넘어가 히틀러가 몰락한 뒤에도 전쟁이 계속된다고 믿는 유대인 이야기인 ‘어떤 휴머니스트’에서 ‘고귀한’ 인간성을 통렬하게 조롱한다.
단편 ‘벽-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는 좋아하던 옆집 여자가 죽어버린 줄도 모르고 괴로워하다가 목숨을 끊는 청년을 통해 소통되지 않는 관계를 비판한다.
진품 수집에 몰두해 온 사람이 아내의 코가 성형한 가짜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가짜’에서는 부풀기만 하는 허영심을 한 순간에 터뜨려 버린다.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이라는 공쿠르상은 한 사람이 한 번만 수상할 수 있다.
로맹 가리는 그러나 1965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받은 데 이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 75년 두번째로 상을 수상해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80년 파리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김남주 옮김.8,000원.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