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대녕씨를 만났다. 그의 장편 ‘미란’이 출간되는 날이다.작가는 일산의 땅값이 수년 만에 너댓 배로 올랐다는 둥 밤늦게 서울 시내에서 일산으로 돌아가려면 모범택시가 경제적이라는 둥 평범한 일산구민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소설에 실린 ‘작가의 말’에 자세하게 써놓았다”며 육성으로 ‘미란’을 말하는 것을 꺼렸다.
‘미란’에는 성(姓)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두 ‘미란’이 나온다.
남자는 한 사람의 미란을 마음에 둔 채 또 한 사람의 미란과 결혼한다. 마음 속 미란은 변하지 않는 환상으로 남아 있고, 몸의 미란은 일상 속에서 바래져 간다.
두 미란을 오가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남자의 방황 뒤쪽에는 두 미란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암시가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불특정 다수가 결국 동일인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그 어떤 타인도 항상 나의 일부다. 우리는 자신에게 조차 낯선 존재인 동시에 엉뚱한 타인과 동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윤씨는 여기에 더해 “과감하게 멜로 구조를 도입한 작품”이라고 짤막하게 구두(口頭)로 설명한다.
소설을 내놓은 뒤 애착이든 아쉬움이든 감정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일단 작품을 끝내면 다 잊어버린다”고 했다.
작가는 대신 화가 얘기를 했다. 화가가 원숭이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사과도 그리게 하고 꽃병도 그리게 했다. 오랜 노력 끝에 원숭이는 제 힘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다.
화가가 원숭이에게 “이제 네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 봐라”라고 말했다. 원숭이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철창을 그렸다.
“그 순간 자기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무엇을 표현하는 게 예술이 아닐까.”
‘윤대녕’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그의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도 많다. 대부분 그가 구축해 놓은 독특한 소설세계를 얼마쯤 기대하는 쪽이다.
그는 낭만적 감수성과 이미지 문체가 어우러진 첫 작품집 ‘은어낚시통신’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면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솔직히 지금까지도 ‘윤대녕’ 하면 ‘은어낚시통신’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당혹감을 느낀다.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작품을썼는데…”라면서도 “어쨌든 나는 작품을 유니크하게 쓰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에 현실이 부재하고 질펀한 삶 체험이 결여됐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제는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도 선선히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작가는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40대란 확실히 젊음을 상실하게 되는 시기”라고 한다.
“부지런히 산에 다닌다. 젊어지지야 않겠지만 적어도 천천히 늙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나이를 먹는 게 불안하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래도 다시 20, 30대를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때 그는 많은 술을 마셨고 숨차도록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충분히 에너지를 썼다고 생각한다. 20대를 다시 산다는 생각만 해도 지친다. 이렇게 말하다니, 내가 정말 나이를 먹었나 보다”라며 작가는 웃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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