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조용히 시사회장에 나타나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영화에 가졌던 열정에 대해, 그래서 더욱 아쉬운 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나 몰라라”며 시사회에 나타나지도 않았던 ‘카라’, 공주처럼 요란했던 ‘비천무’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징후는 오래 전부터 감지됐다.
영화 ‘와니와 준하’를 찍는 동안 제작진이 놀라서 전하는 말들.
“말하기 주저하는 감독에게 ‘먼저 머리를 짧게 잘라야겠죠’라고 했다”, “촬영 2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다른 배우 촬영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런 소문이 사실임은 시사회장에 함께 나온 주진모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예인이라는 느낌이들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의 충고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김희선(25)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영화 속 와니란 인물의 캐릭터가 그렇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름기’가 완전히 빠진 모습이었다.
이제는 무엇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말라 있었다. 그만큼 ‘와니와 준하’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는 얘기도 된다.
“와니의 그리움, 외로움, 공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 역할 중 나와 가장 나이가 비슷한 인물이기도 하고. 또 나도 경험이 있는 사랑 이야기여서 몰입했다”고 했다.
영화가 그를 따라가지 않고, 그가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셈이다.
그것이 비록 몇 걸음밖에 안 된다고 할지라도. 김희선 자신의 표현대로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느냐는 생각에 속상해 밤새 울면서 이민이라도 가야 할까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나 예쁘지”의 얼굴 스타가 아니라 배우 김희선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소중하다. 때문에 그 눈물 역시 ‘비천무’에 쏟아진 혹평으로 흘려야 했던 부끄러운 눈물과는 다를 것이다.
그때 세상을 욕하지 않고, 자기 허물을 냉정하게 되돌아 봤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전에는 시간이 없어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는 김희선. 젊은 스타는 그만큼 정신없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기를 팔기에 바빴다.
그것이 ‘배우 김희선’으로 가는 길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그는 머리를 두 번이나 자르고, 몇 달 동안 조용히 와니로 살 수 있었다.
“열정을 갖고 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좋아 보이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해야겠지요.”
배우와 영화 속의 인물은 결코 따로따로 일 수 없다. 기막힌 흉내는 연기가 아니다.
영화는 어떤 형태로든 배우의 생각과 삶의 태도와 땀을 보여준다. 김희선과 ‘와니와 준하’에서도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영화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은 남지만 달라지기 시작한 김희선이 반갑다. 그의 나이 이제 스물 다섯이고, 한국영화는 여전히 여배우 기근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 와니와 준화
‘와니와 준하’(감독 김용균)는 묘하다.
마냥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의 찬가만 부르지도 않고,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애잔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순정만화 같다고 하기에는 깊고, 단순한 멜로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세련됐다.
이런 느낌은 1차적으로 애니메이션의 동화(動畵)를 그리는 여주인공 와니(김희선)의 캐릭터와 배경에서 비롯된다.
자기 일에 열심이면서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한 여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준하(주진모)를 사랑하고 그래서 그와 동거하고 있지만 가슴이 공허해 보이는 여자.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그 분위기에 감염이라도 된 것처럼 준하 역시 그런 와니를 말없이 어루만지기만 한다.
‘와니와 준하’는 처음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지는 어린 시절 두 사람의 만남과 지금의 두 사람 모습으로 바뀌는 마지막까지 그 사이에 와니의 슬픈 가족사와 이룰 수 없는 첫사랑의 아픔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조금씩 정교하게 설명해 나간다. 준하와의 관계를 매개로 플래시백(회상)으로 드러나는 이복 남동생 영민(조승우)과의 관계와 그로 인한 가족의 비극이 와니와 주변 인물을 짓누른다.
그 아픔과 죄의식, 그리움에 소리없이 신음하는 와니.
그 과거로부터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기시감(언젠가 한 번 본 듯한 착각)이었다.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준하. 착각이 아니었다. 준하는 어린 시절 그에게 선물을 주고 간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바로 그 소년이었다.
동심을 상징하는 수채화 같은 그림은 사랑의 상처야말로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순정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해 준다.
‘와니와준하’는 이복남매간의 사랑이란 ‘금기’를 건드리는 충격적인 소재를 선택했다.
감독도, 배우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모자이크를 맞추듯 미스터리 기법과 영상 이미지로 접근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후반의 비극성과 연민을 크게하지만, 중반까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와니와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이 적은 만큼 지루해 할 수도 있다.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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