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깊은 골짜기를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다. 왼쪽은 금대봉(1,418m), 오른쪽은 대덕산(1,307m)이다.남쪽으로부터 따스한 볕을 받는 대덕산의 남쪽 기슭은 여전히 진한 가을이다.
아직 잎을 달고 있는 황금빛 낙엽송이 무리지어 바람에 흔들린다. 반대로 그늘진 금대봉의 북쪽 능선은 이미 겨울에 깊이 들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하얀 눈을 지고 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길 위의 계절도 바뀐다. 북풍이 불면 금바늘 같은 낙엽송의 낙엽이 날리고, 남풍이 불면 나무에 얹혀있던 눈송이가 떨어진다.
검룡소(儉龍沼ㆍ강원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골) 가는 길은 이렇게 오고가는 두 계절의 접점이다.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이다.
이 곳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장장 514㎞를 굽이치고 달려 서해안으로 흘러든다. 우리 민족이 한강을 중심으로 역사를 만들어 왔다면 검룡소는 그 역사를 키운 샘물인 셈이다.
원래는 강원 평창군 오대산의 산샘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꼽혔다.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꼭 집어내는 문헌상의 기록은 없지만 예로부터 유명한 샘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거의 모든 지리지에 명시돼 있다.
물맛이 매우좋고 다른 물과 섞이지 않기 때문에 맑은 빛을 간직한 채 서울까지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의 양반들은 강가에서 뜬 물을 먹지 않고 배를 타고강 한가운데로 나가 길어온 우통수의 맑은 물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우통수를 한강의 발원지로 여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 하늘에서 인공위성이 찍은 정확한 지도가 근거가 됐다.
지도상의 거리를 측정해 본 결과 검룡소의 물줄기가 약 32㎞ 더 길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1987년 국립지리원이 한강의 발원지로 공식인정했다.
검룡소는 큰 길(35번 국도)에서 약 7㎞ 떨어져 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지날 수 있는 비포장과 포장이 섞인 찻길이지만 나머지 1.3㎞는 일반 차량이 다닐 수 없다. 걸어야 한다. 그러나 힘들지 않다. 경사가 거의 없는 분위기 좋은 산길이다.
잎이 넓은 산죽밭을 지나고 가지가 하늘을 가려 거의 캄캄한 낙엽송숲을 통과한다.
맑은 개울물이 함께 해 지루하지 않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 길 옆으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핀다고 한다.
희귀종인 하늘다람쥐도 산다. 그래서 금대봉과 대덕산은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낙엽송숲의 끝지점에 육각형의 정자가 놓여있고 그 옆에 기념비가 서 있다. ‘태백의 광명정기 예 솟아 민족의 젖줄 한강을 발원하다’라고 쓰여있다.
기념비 뒤로 집채만한 암반이 버티고 있고 그 위에 검룡소가 있다. 한강의 발원지라고 하지만 예상보다 그리 크지 않다.
폭이 약 5m 둘레가 약 20m 정도 되는 동그스름한 샘물이다. 샘 한쪽 구석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구멍이 보인다.
더 높은 기슭에 있는 제당궁샘, 고목나무샘, 물구녕석간수 등의 샘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모여 이 곳에서 다시 솟아나온다고 한다.
크기는 작지만 에너지는 만만치 않다. 하루에 용출하는 물의 양은 평균2,000~3,000톤.
5,000톤까지 뿜어낼 때도 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언제부터 솟아났는지는 모르나 지금까지의 물을 모두 모으면 거대한 바다가 되리라.
그 물이 오랜 세월을 흐르면서 암반에 길이 약 20m, 폭 1.5m의 계단식 폭포를 만들었다. 마을에서는 ‘용틀임폭포’라고 부른다. 전설이 내려온다.
서해에 용이 되고자 하는 이무기가 살았다. 이무기는 한강을 따라 하늘에 오르기위한 여행을 했다.
그래서 도달한 곳이 검룡소의 암반. 암반을 오르기 위해 이무기가 지그재그로 몸을 심하게 뒤틀었다. 바위에 길고 울퉁불퉁한 자국이났고 그 자국이 폭포가 됐다.
용은 검룡소에 살면서 마을의 소를 잡아먹어 마을 사람들이 용을 죽이고 한동안 샘을 메워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검룡소 샘물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시사철 온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섭씨 9도를 유지한다.
한여름일지라도 손을 집어넣으면 채 1분을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겨울에는 반대이다. 영하 20도 이하로 곤두박질치는 골짜기의 혹한에도 얼지 않는다.
주변에는 눈이 쌓이지만 샘과 용틀임폭포 주변은 푸른 이끼가 가득하다. 눈 속에서 헤매던 산짐승들이 물을 마시러 떼를 지어 찾아온다.
역사의 샘인 검룡소는 생명의 물이기도 하다.
검룡소의 용틀임 폭포. 유장한 한강의 시작이다. 사시사철 섭씨 9도를 유지하는 이 물은 낙엽과 잔설 속에서도 이끼의 푸른 빛을 지킨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낙동강·오십천도 태백산자락에서 시작
태백산 자락에는 한강의 발원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525㎞를 흘러 남해로 흘러드는 낙동강과 동해안의 큰 강 중 하나인 삼척 오십천도 태백산의 품에서 출발한다.
동해, 서해, 남해 등 세 곳으로 물의 기운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태백에서 정선(임계 방면)으로 가는 35번 국도에는 이를 의미하는 삼수령(三水嶺)이 놓여있다.
현지 사람들에게는 ‘피재’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삼수령 꼭대기에 내리는 빗방울이 동쪽 기슭으로 방향을 잡으면 오십천, 서쪽을 택하면 한강, 남쪽기슭에 떨어지면 낙동강이 된다고 한다.
달랑 검룡소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두 강의 발원지도 찾아보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낙동강의 발원지는 황지(黃池). 현재 태백시의 중심이 된 황지동의 지명이 이 연못에서 비롯됐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다.
상지, 중지, 하지 등 세 개의 연못으로 구분되며 가장 큰 상지는 둘레가 100m에 이른다.
연못 한가운데에서 물이 솟는다. 퐁퐁 솟는 것이 아니라 마구 솟는다. 하루 용출량은 약 5,000톤. 이 물은 황지천이 되어 태백시를 감싸고 흐른다.
황지동의 경계에서 철암천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낙동강의 본류가 된다. 노승에게 시주 대신 소똥을 퍼줬다가 벼락을 맞아 고대광실이 연못으로 변했다는 황부자 전설이 내려온다.
지금은 시민근린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마을 노인들의 쉼터가 됐다. 푸르스름한 맑은 물 속에 수초가 자라고 잉어, 붕어 등이 수초 사이를 유유히 헤엄친다.
황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철암천에 절경이 하나 있다. 구문소이다. 강줄기가 바위를 우회하거나 타고 넘은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뚫고 지나갔다.
드문 지형이다. 바위를 뚫었다고 해서 ‘뚜루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역 일대가 고생대 지형의 변화를 잘 읽을 수 있는 지질이어서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돼 있다.
오십천의 발원지는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에서 들어간다. 태백시에서 삼척시로 내려가는 38번 국도로 접어들면 통리재.
여기서 신리쪽으로 난 지방도로로 우회전하면 구사리다. 구사리에서 백산골 골짜기를 따라 난 산판도로 흔적을 따라가면 길은 곧 오솔길로 바뀌고 길을 따라 흐르던 물줄기가 끝나는 곳에 자그마한 늪이 있다.
늪 옆에 오십천 발원지라고 새긴 작은 비석이 있다. 여의치 않다면 발원지에서 가까운 미인 폭포에들러도 좋다. 국내 최대 규모 협곡인 통리 협곡을 이루고 있다.
■가는 길
승용차는 영동고속도로 남원주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빠져 제천-영월을 거쳐 태백시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빠르고 풍광이 좋다.
약 5시간. 시내의 화전사거리에서 우회전, 35번 국도를 타고 삼수령을 넘어 하장 방면으로 약 10㎞쯤 달리면 왼쪽으로 검룡소 입구 안내판이 보인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태백역까지 하루 6차례 태백선열차가, 동서울터미널에서 하루21차례 시외버스가 왕복운행한다.
태백역 바로 앞의 버스터미널에서 검룡소 마을인 안창죽까지 시내버스가 있지만 새벽과 저녁 두 차례뿐이다.
하장,임계행 버스를 타고 입구에서 내려 주민이나 다른 여행객의 차를 빌려타는 방법도 있다.
입구에서 약 7㎞이기 때문에 트레킹 삼아 걸어도 좋다. 역앞에 있는 관광안내소(033-550-2828)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다.
■ 쉴 곳
검룡소 부근에는 숙박시설이 전혀 없다. 여름이라면 야영이 가능하지만 요즘은 여의치 못하다.
태백시나 태백산도립공원 당골광장 부근에서 숙박을 해결해야 한다. 시내 황지연못 바로 옆에 있는 메르디앙호텔(033-553-1266)을 추천할 만하다.
44실의 객실과 사우나, 나이트클럽 등을 갖췄다. 태백산도립공원에는 태백시에서 운영하는 ‘태백산민박촌’(553-7460)이 있다.
73실에 이르는 대형 숙박시설로 말이 민박이지 콘도식 시설을 갖추고있다. 9평 형(비수기 2만 5,000원)에서 32평 형(9만 5,000원)까지 객실의 크기도 다양하다.
■먹을 것
태백산 한우가 유명하다. 인근 정선이나 삼척 주민들이 고기를 즐기기 위해 원정외식을 할 정도이다. 연하고 쫄길쫄깃하다.
맛의 비결은 고산지대인데다 물이 좋기 때문. 해발 65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라 모기에 대한 스트레스가없다.
특히 무공해 청정수의 역할이 크다.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소도 태백의 산자락에 1주일에서 10일 정도 머물게 하며 신선한 물을 갈아 먹이면 육질이 변할 정도라고 한다.
태백역 앞의 경성실비식당(033-553-9357), 시청 주변의 태성실비식당(552-5287) 등이 유명하지만 태백시의 어느 고깃집에 들어가도 실망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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