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55)씨가 시집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문학과지성사발행)를 냈다.그는 요즘 몸이 불편하다. 기자가 전화를 하자 “병 때문에 되도록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려고 하지 않는다”는,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전의 자택에서 칩거하며 그는 집필에만 열중하고 있다.
복씨가 쏟아내는 글은 놀라울정도로 폭이 넓다. 가상역사소설이라 불린 ‘비명을 찾아서’로 충격적인 문단 데뷔를 한 그는 지금 다른 장편소설 ‘역사속의 나그네’를 끝맺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평론집 ‘현실과 지향’ ‘진단과처방’ 등에서 자유주의적인 경제 평론을 전개했으며, 산문집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통해 영어 공용화 논쟁을 이끌어낸 논객이기도 하다.
그는 그러나 원래 시인이기를 꿈꾼 사람이다. 이번 시집은 ‘오장원의 가을’ 이후 13년 만에 나온 그의 두번째 시집이다.
그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월이 지나면 친구도 연인도 사라진다. 시간의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걸 알았다. 덜 비참해지는 길을 찾겠다고 생각했다. 내 시들은 결국 시간의 압제에 무작정 남루해지지 않으려는 몸짓이다.”
복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 나는 평론가 고 김현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어머니의 임종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상을 치르는 병원에서는 곡도 못하게 했다. 곡성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그 곡성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몸으로 익힌 것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져가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그는 시를 썼다.
‘무엇인가, 올만한 이들 다 다녀가고 관도 떠나 돗자리를 걷어야 될 참에 뒤늦게 찾은 어릴 적 친구의 나직한 곡성이 불러낸 것은? 의례적 곡성에 가슴이 젖으면서도 스스로는 곡을 배우지 못한 내가 잊은 것은?”(‘한국인, 서력 1990년대’ 부분)그는 또 먼 발치에서 바라보다가 돌아선 옛사랑을 노래한다. ‘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끊긴 인연의 실을 찾아// 저승 어느 호젓한 길목에서/ 문득 마주서면// 내 어리석음이 조금은 씻겨/ 그때는 헤어지지 않으리.’(‘留別(유별) 2’ 부분)그리고 곁에서 잠든 아내를 보면서 살붙이의 정을 느낀다.
‘이젠 세월이 무겁게 앉는가,/ 입을 조금 벌리고/ 아내가 코를 곤다.// 서글픈 것이다/ 가슴 저리는 사랑에 이르지 못한/ 아릿한 연민.’(‘되짚어가는 處容(처용)’ 부분)
복씨는 시간에 대한 자신의관심이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내 소설은 대부분 역사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비명을 찾아서’에서 없는 시간도 만들어냈고, ‘역사 속의 나그네’는 있다가도 없어지는 시간을 형상화할 것이다.”
그는 실제로 시간 여행을 다룬 과학 소설을 즐겨 읽고, 지적인 호기심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의 글쓰기는 SF소설을 통해 단련된 것이라고도 말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나아서 클라크, 필립 케이딕 같은 SF소설 작가들의 이름을 읊기도 한다. 과학소설을 탐독하면서 시간의 문제를 고민해온 복씨는 시간의 횡포를 이기는 ‘마법’은‘기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돗자리 깔고 누워/ 아내와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하는데/ 그녀가 문득 깔깔 웃었다.// 한순간 거기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스물 몇 해전에 본 맑은 얼굴./ 나는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방금 왼 주문이 무엇이었더라?’(‘마법사의휴일’ 부분)
“토마스 하디는 20여권의 소설을 썼다. 그렇게 산문을 걸러낸 뒤 700여 편의시를 썼다더라. 나도 그만큼 많은 산문을 쓰고 나면 맑은 시를 쓸 수 있겠지”라고 복씨는 말했다.
우리시대의 논객이기도한 복거일씨는 “백성이 정치를 하는지 않는지 관심이 없는 게좋은 정치아닌가. 그처럼 독자가 의식하지않는 문체가 좋은 것”이라며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중요성을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