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과 달리 따뜻한 늦가을 날씨가 계속되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또 영락없이 춥다.우리아이들은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전생의 업보를지고 있기에 이처럼 잔인한 동장군의 저주를 받아야 하는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발상이겠지만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다.
거기다가 금년엔 작년에 비해 갑자기 몇 곱절 어려워진 수능문제들을 받아들고 이게 또 무슨 저주인가 싶었으리라.
우리는 왜 이렇게 해마다 '시험, 시험'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오죽하면 영국의 BBC방송이 우리 나라 수능시험을 보도하며 '죽느냐 사느냐(do-or-die)의 시험'이라했을까.
이 세상 어디에 아이들 시험에 전국민이 함께 가슴을 쓸어 내리고 출근시간까지 늦추는 나라가 또있으랴.
나는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미국유학 시절을 떠올린다. 박사학위 취득의 마지막 관문인 공개세미나와 구두시험을 치르던 날이었다.
평소에 교수들에게 내 연구의 진행상황을 비교적 자주 알려드린 편이었기에 질문은 그리많지 않았다.
세미나를 마치고 몇 가지 질문들에 나름대로 열심히 대답을한 후 멋쩍게서 있으려니까 지도교수가 이제 내게 박사학위를 줄 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니 문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얼마 동안인지 복도에서 초조하게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으려니까 다시는 열릴 것같지 않던 그문이 열렸다.
들어오라는 지도교수의 말에 도살장에 들어서는 황소처럼 장렬한 기분으로 방에 들어섰다.
하지만 내가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지도교수는 대뜸 축하한다며 내 손을 꽉잡았다. 다른 교수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따뜻한 악수를 건넸다.
무언가 뜨겁고 묵직한 것이 가슴저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때 지도교수가 내게 이제 드디어 박사가 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지도교수는 분명 내게 명문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감회가 얼마나 엄청난가 물었으리라.
하지만 내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이제 남은 인생 동안 다시는 시험을 볼 필요가 없게 되어무엇보다도 기쁘다고 답했다.
조금은 뜻밖이고 맥 빠진 내 대답에 교수들은 모두 허허거리며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그들은 모른다. 시험을 위해 살았고 시험에 울고 웃었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인생의 쳇바퀴로부터 홀연 뛰어내린 것 같았던 그때 내 기분을 그들은 알 길이없다.
제 아무리 명문 하버드 대학의 교수라 해도 이땅에 살아보지 않은 그들이 시험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되어 버리는 이 엄청난 삶의 질곡을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이제 한 달쯤후 수능 성적이 나오면 우리 아이들은 또 제가끔 그 크고 작은 숫자들을 운명처럼 받아들고 인생을 결정할 것이다.
마치 신의 계시라도 되는양 그 수의 크고 작음에 따라 누군가가 미리 정해준 인생의 길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누구는 자의반 타의반 더 큰 숫자를 얻기 위해 오던길을 몇 발짝거꾸로 물러서기도 할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제법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꿈을 꿀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그저 그 숫자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며 여생을 보낼 준비를 할뿐이다.
수능시험을 잘 못봤다고 상심하고 있는 인생 후배들에게 꼭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내가 뭐 대단한 학자나 된양 거들먹거리며 살고 있지만 내게도 그 옛날 무슨 큰죄라도 저지른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저 종로의 뒷골목을 걸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더 큰도약을 위해 한해 더 무술을 연마하는 것이 마치 이 땅에 사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처참한 경험인 것처럼 '버림받은' 재수생 시절을 나도 겪은바 있다.
하지만 그 일년의 와신상담이 긴 인생여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손해가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재수를 하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무리 이 사회가 우리를 숫자로 규정지으려 해도 인생은 길고, 걷다보면 길은 언제나 또 나타난다는 걸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비록 남보다 공부를 좀 오래 했어야 했고 뒤늦게 시작한 돈벌이라는 것이 겨우 쥐꼬리만한 월급밖에 못받는 서울대 교수라서 아직도 남의 집에 전세 들어 사는 신세지만 나는 이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행복하냐고 물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요즘 우리 사회에 몇이나 있으랴. 나는 그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고한다. 젊음이여, 부디밥 먹는 일에 목을 매지 말라.
한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평생밥 먹는 걱정만하고 살 것인가. 그래서 남보다 밥 한술 더 떠먹고 저승길에 올라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무슨 일이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택하여 최선을 다하면 절대로 굶지 않는다. 그저 밥만 많이 주는 직업을 위해 젊음을 바치지 말라.
시험은 나만 못 본 것이 아니다. 그 운명의 숫자에 개의치 말고 잠자고 밥 먹는 시간외에 가장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 과감히 길을 떠나라.
"길은 가면 뒤에 있다"더라.
/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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