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9일 정재문(鄭在文)의원 항소심 선고에서 검찰측 증인 김양일씨의 증언능력을 배척하고 김씨가 제출한 증거가 조작됐다고 밝혀 그 배경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김씨가일부 여당 의원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데다, 증언 내용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를 직접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날 밤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긴급 배포, ‘조작’의혹을 공식 부인하고 나섰다.
■왜 조작했나
‘북풍(北風)사건’은 수사기관에서도 증거를 찾지 못해 사건이 묻혀가고 있었으나, 김씨가 지난 9월21일공판에서 “정 의원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병수(安炳洙) 부위원장의 만남을 주선했고, 안 부위원장으로터 회의록과 이 총재의 자필 사인이 든 위임장 사본을 받았다”고 증언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검찰은 당시 김씨로부터 입수한 회의록과 위임장 사본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고, 변호인측은 “위임장이 조작됐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날 회의록에 대해 ▦정 의원과 북측이 한 부씩 만 보관하는 문서원본을 연락책에 불과한 김씨가 북측에서 받았다고 믿기 어렵고 ▦합의서상 정 의원 서명이 다른 서신 서명과 완전히 일치하며 ▦양측 서명 부분에 가필한 흔적이 뚜렷한 점 등을 들어 “증거가 명백히 조작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위임장 사본 역시 입수 경위, 문서형식과 내용, 필적 등에 비춰 조작 가능성을 시사했고, 나아가 ‘(북측에서 받은) 서신에 나와있는 A회장은 이 총재’라는 김씨의 증언 역시 과거 진술과 상반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따른다면 김씨는 거대 야당 총재를 겨냥해 터무니없는 증거조작을 시도한 셈이다.
그러나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정 의원의 회합이 김씨를 통해 사전에 상당한 준비 끝에 이뤄진 것으로 인정된다”고지적했듯이 베이징에서 이뤄진 회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김씨가 증거조작까지 하며 위증을 한 배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 있다.
■여권과의커넥션 의혹
김씨의 증언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경위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검찰측 증인이었던 김씨는 지난해 6월 2심 재판이 시작된 뒤 16차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 한번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9월21일돌연 증인으로 나와 문제의 증언을 했고, 이 같은 사실은 3일 뒤 여당의 기자회견 자리에서 흘러 나왔다.
김씨는 재미동포 사업가로 정부의 중요대북 사업에서 실무 역할을 해 왔고 여권의 상당수 인사와 깊은 교분을 맺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판부는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 듯, 선고가끝난 직후 “재판 전체를 정치적 폭로의 장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무척 불쾌했다”고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조작 문건은 정권 주변의전문 공작팀 등에서 만든 것이 아니냐”며 “검찰이 문건의 신뢰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증거로 제시한 것은 문제”라며 정치 공세를 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날 밤 보도자료를 통해 ‘조작’의혹을강하게 부인하면서, 이번 판결로 촉발될 여ㆍ야간 정치공방에 자칫 검찰이 휩쓸리지 않을까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검찰관계자는 "김씨가 정 의원과 북측 인사의 만남이 계획적이었다는 자신의 증거로 제출한 합의서를 재판부에 건넸을 뿐"이라며 "검찰이 무슨 이유로 증거를 조작하겠는가"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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