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것은 바른 결단이다.내분과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하는 집권당의 총재직을 갖고 있느니, 초연한 입장에서 국정에 전념하려 한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잔여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대통령으로서 굳이 정국운영의 짐까지 져 가며 정치의 구정물을 뒤집어 쓸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당의 인적쇄신 요구에 부응한 것도 바른 결정이다. 권노갑 박지원씨가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한 뜻은 그들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국정의 인적 시스템을 바르게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뜻에서라도 김 대통령은 차제에 정부의 면모를 일신할 필요가 있다.
내각은 지금 바꿔야 할 사람 천지다. 정치적으로 상처 투성이인 국무총리는 물론,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트린 경제부처 또한 교체돼야 마땅하다.
국가 망신을 자초한 외교부도 당연히 교체돼야 한다.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직에서 물러난 마당에 구태여 민국당 의원을 외교부 장관 자리에 그대로 두어야 할 이유는 없다.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라도 청와대 보좌진은 지금부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대통령의 정치와의 단절 의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는 향후 여야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 추를 바르게 잡아야 함은 물론, 정치권에 대한 권력의 간섭이 없도록 면밀히 살펴야 한다.
만에 하나 김 대통령이 민주당의 정권재창출 문제에 간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모든 일은 곱하기 제로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오늘의 결단이 위기모면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진배 없는 일이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김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에 걸맞게 진정으로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는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민주당은 홀로 서게 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DJ 없는 DJ정당' 의 이미지가 금세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이미지를 불식하고 새로운 정당,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 나가야 할 책무는 민주당 사람들 몫이다.
갈등과 내분으로 지리멸렬의 정당이 될지, 국민정당으로 새로 태어날지 여부는 오로지 민주당 하기 나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제 여야관계도 질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야는 비로소 상생의 정치를 펴나갈 필요 충분조건을 갖추게 된 셈이다.
모쪼록 김 대통령 총재직 사퇴가 생산적 정치의 긍정적 변수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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