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총재직 사퇴를 선택한 것은 국정과 정치를 분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차기 대권을 향한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통일 외교 경제 등의 국정에만 전념하겠다는 의미다.
정권 재창출에 얽매여 대중적 인기에 신경쓰기 보다는 임기 후반에 꼭 필요한 국가적 과제들을 매듭지어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바람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선택은 여야의 협조만 얻어낼 수 있다면 원만한 국정 운영을 가능케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환영 의사를 밝히고 민주당 내분도 일단 잠잠해진 점으로 미루어, 총재직 사퇴는 일단 탄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어두운 면도 적지 않다.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할 경우 시급한 법안통과가 아예 봉쇄되는 등 국정 운영에 심각한 장애가 생길 수 있다.
더욱이 민주당이 차별화를 시도하는 차원에서 정부에 대한 공격 대열에 합류하면 레임덕이 더 가속화할 가능성도 크다. 이 경우 공직 사회의 줄서기 경향, 공권력의 권위 추락으로 사회적 혼돈 양상이 전개될 우려도 있다.
김 대통령이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총재직이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야당의 견제는 물론, 여권 내부에서조차 무차별적인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총재직의 유지는 정쟁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도 조기 사퇴의 한 원인이 됐다. 청와대의 한 고위인사는 “김 대통령은 남북관계, IMF 조기극복, 인권신장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는데 야당도 아닌 여당 내에서 흔들어 대는 주장이 나오자 비감함과 분노를 토로했다”고 전했다.
박지원(朴智元)정책기획수석의 사표를 수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 대통령은 구체적인 비리나 잘못이 적시되지 않았는데도 특정인을 사퇴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국정과 정쟁의 분리를 위해 논란의 소지를 없애는 차원에서 박 수석을 사퇴시켰다.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도 김 대통령의 의중을 따라 결국 정치 일선에서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총재직 사퇴 후 대통령과 정치권과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되느냐이다. 민주당과 내부적으로 연관성을 이어갈 경우에는 야당의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여권의 대권 경쟁에도 휘말릴 수 있다.
따라서 김 대통령이 임기를 1년3개월이나 남겨놓고 던진 총재직 사퇴라는 ‘정치적 실험’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미련을 버리고 원래 취지에 맞는 후속 조치들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착잡한 청와대 "黨 홀로서라"
청와대는 8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를 착잡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 ‘반전의 계기’로만들자고 다짐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박지원(朴智元) 정책기획수석마저 사퇴하자 “이제더 이상 ‘네 탓’ 논쟁을 그만하고 청와대도, 당도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는 뼈있는 언급들이 속출했다.
한 고위관계자는 “김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제 국정에 전념, 민심 회복에 노력할 것”이라며 “당도우산이 걷힌 만큼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말했다.
청와대는 심기일전을 강조하면서도 김 대통령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해온 당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당 출신의 한 관계자는 “일부 소장 의원들마저 대통령을 무작정 몰아붙일때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다”면서 “총재직 사퇴에는 이 같은 염증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착잡 미묘한 정서 속에서 청와대는 향후 민주당과의 관계, 또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신경 쓰는모습이다. 현실적으로 원만한 국정 운영을 위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정교한 접근법이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일부 관계자들은“대통령이 당적 이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 결별은 아니며 당정관계도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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