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간 경제전쟁’의 새로운 룰을 정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142개 회원국 통상 각료들이 9일부터 카타르 수도인 도하에서 머리를 맞댄다.21세기 세계 무역과 투자 자유화의 틀, 즉 뉴라운드 출범을 위해서다.
자유무역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73%를 교역에 의존하고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경제력을 키우는 제도적 터전.
세계 경기 침체와 그에 따른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자유주의적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있는 만큼 이번 회의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실타래처럼 얽힌 각국의 이해관계를 풀기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또 뉴라운드가 출범한다고 반드시 능사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이해가 얼마나 반영되느냐에 따라 날개가될 수도, ‘세계화의 덫’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국대 장원석(張原碩ㆍ경제) 교수는 “협상대표단 한 사람, 한사람이 전사(戰士)의 각오로테이블에 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농업문제
미국 호주 등 농산물 수출국인 케언즈그룹과 수입국간의 관세및 보조금 감축 공방이 치열하다.
우리의 현안은 농업 개발도상국 지위 유지문제.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한국은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관세 및 보조금 감축 비율을 선진국에 비해 낮게 책정할 수 있었지만 선진국들의 개도국 졸업 압력에 밀릴 경우 관세 인하 등 시장을 더 열어야 한다.
WTO각료회의는최근 2차 각료선언문 수정안에서 ‘개도국 우대조항이 보다 정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재검토한다’는 내용을 삽입,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농수산 분야 정부보조금 문제. WTO는우리가 주장해 온 '단계적(progressive) 감축' 대신 '실질적(substantial) 감축'을 협상 목표로 채택했다.
이는 현행 보조금제도를 상당한 수준까지 줄여야 한다는 의미로, 후속 협상에 따라 추곡수매제도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쟁점별 세부원칙에 대한 합의는 내년 3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반덤핑문제
WTO의 반덤핑규정 개정 의제는 1999년 시애틀 3차각료회의때 거의 모든 회원국가가 찬성했으나 미국의 반발로 협상의제 채택에 실패했다.
이번 회의에 정식 협상의제로 채택된 것만도 상당한 진전인 셈이다.
반덤핑의제란 미국의 최근 철강 통상법201조 파동에서 보듯 일부 선진국들이 반덤핑조항을 무분별하게 동원, 자유무역 기본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만큼 반덤핑조치를 내릴 수 있는 조건과 주체 등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규정하자는 것.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 거의 모든 개도국이 반덤핑 규정의 개정을 주장하고 있는반면, 미국은 국내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인 만큼 논의 자체에 의미를 두겠다는 입장이다.
■ 공산품ㆍ서비스
관세율 인하폭과 고율관세 제거, 관세 양허범위 확대 등이주요 쟁점이다.
개도국의 경우 평균 관세율이 20~30%에 이르는만큼 관세 장벽을 대폭 낮출 수 있다면 우리 수출경쟁력에는 큰 도움이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낙균 연구위원은 최근 뉴라운드 토론회에서 “공산품협상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에 2.6~2.9%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EU 등이 제안한무관세화 논의가 급진전될 가능성에 대비, 재정 적자의 규모를 감안해 무관세화의 대상을 선정하는 내부 작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최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서비스 역시 개방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금융서비스 분야의 외국은행 지점 추가설립 차별과 기간통신사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 규제, 위성방송과 케이블방송에 대한 제한 등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 기타 의제
EU는 환경문제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과학적인 입증이 안되더라도 환경에 유해하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규제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EU 주장인 반면 개도국과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협상의제에는빠졌지만 EU는 계속 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외국인투자의 내국민 수준 대우와 경쟁법(공정거래법)의 국가간 동일 적용 문제도 개도국과 선진국이 대립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그린룸Green Room)회의
각료회의 공식회의는 전체회의의 경우 참가국 대표들의 의례적인 기조연설, 작업반회의는 찬반그룹간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자리인 만큼 실질적인협의와 타협은 그린룸회의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그린룸회의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사무국 3층 사무총장실 바로 옆 회의실 카페트가 초록색이어서붙여진 이름으로, 주로 국가간 합의가 어려운 현안을 다룰 경우 막후 협상시 수시로 그 방을 이용한 데서 유래됐다.
그린룸회의는 지난 99년 시애틀각료회의에서도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실질적인 진전이 어려움을 겪자 마지막 기대를 사기도 했지만 농업 수출보조금 문제 등에 걸려 성과를 내지 못한바 있다.
그린룸회의는 찬반그룹별 주요국 20여개국이 참여하는 회의여서 의사결정과정에 배제된 국가들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최윤필기자
wai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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