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의 제작사인 신씨네신철 대표. 7월 17일 '엽기적인 그녀'를 개봉해 놓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첫 주말 서울 관객 19만명, 그 이후에도 평일 7만명이란 기록이 이해되지 않았다.
1996년에는 '은행나무침대'(67만명)로, 98년에는 '편지'(72만4,000명)로 그 해 최고 흥행기록을 맛본 그였지만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했다.
서울 44개 스크린(상영관)이란 숫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은행나무침대' 와 '편지'의 서울 상영관이 14개 였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편지'가 125일 동안 줄기차게 관객이 들어왔는데도 겨우 70만명을 넘었는데 '엽기적인 그녀'는 78일만에 2배가 넘는 176만4,000명이었다.
'친구'는 엄청났다. 서울 72개 스크린, 개봉 첫 주말 22만3,000명. 5개월 만에 266만4,000명.
추석연휴에 '조폭 마누라'가 서울 30만명이란 흥행을 하자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은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대표에게 전화를 해 "설명 좀 해주라"고 말했다.
93년 '서편제'와 이듬해 '투캅스'로 각각 최고 흥행사에 올랐던 두 사람이었다. 이 사장으로서는 '서편제' 때와 지금의 차이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94년4월10일 '서편제'가 단성사(1,117석)에서 개봉했다. 멀티플렉스(복합관)가 생기기 전이었다.
강남 씨네하우스가 유일하게 복합관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 개봉관이라고는 9개 밖에 없었으니 '서편제'는 단성사가 유일한 상영관이었다.
출발은 저조했다. 개봉 첫날 1,800명. 하루 2,000명이 안되면 극장 마음이다. 하지만 일주일 후에야 관객이 늘기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 등이 극장을 찾았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과제물로 '서편제'를 선택하기도 했다. 매스컴은 "아직도 안 보셨나요"라고 질문 했다.
무려 238일 동안의 상영. 단성사는 영화 간판이 흐려져 두 번이나 새로 갈았다.
그렇게 '서편제'는 '한국영화의 꿈'이었던 서울 관객 100만명 시대를 열었다. 영화계는 "이런 기록은 두 번 다시 안 나온다"고 흥분했다.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99년 강제규감독의 '쉬리'(서울 243만명)가 '서편제'의 신화를 무너뜨렸다.
지금은 신인 감독이 500만명을 가볍게 넘기는 시대가 됐다. 한국영화가 철저히 오락산업으로 바뀌고, 그것을 일상처럼 즐기는 젊은 관객들. 극장들은 눈 깜짝할 사이 복합관으로 탈바꿈하면서 전국에 스크린수만 740여 개나 됐다.
"8개월 동안 난리를 쳐 100만명을 넘었는데 지금은 보름 만에 해치우니… 빨라도 너무 빠르다" 는 이태원 사장의 말 만큼이나 한국 영화시장은 자고 나면 놀랄 만큼 커져 있다.
그것이 바람직하든 아니든 간에.
이대현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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