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수능시험에서도 ‘난이도 악몽’이 재연됐다. 8일 일선 고교의 올 수능시험 가채점 결과, 전례없는 ‘수능 인플레’였다는 비판을 받은 지난해와 정반대로 ‘수능 대폭락’ 사태가 발생해 ‘널뛰기식’ 난이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일선 학교에서는 학교교육과 학생들의 학습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수능시험의 난이도가 더 이상 춤을 춰서는 안된다며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난이도 조정 성공인가,실패인가
출제 당국이 전년도에 비해 평균 4~5점 내려가겠다던 2001학년도 수능에서는 오히려 26.8점 올랐고 올해는 16~37점 정도 하락할 것이라는 출제당국의 예상과 달리 적게는 20~30점, 많게는 60~80점까지 떨어졌다는게 일선 학교의 전언이다.
1994년 수능이 처음 도입돼 97년부터 400점 만점이 된 이후 수능 난이도는 해마다 들쭉날쭉 했지만 지난해와 올해처럼 등록 폭이 큰 적은 없었다.
‘수능 난이도는 귀신도 맞추기 힘들다’는말도 있지만 올 수능 난이도를 상위 50% 기준으로 77.5점±2.5점(100점 만점 기준)에 맞추겠다던 출제 당국의 당초 방침과는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에 대해 수능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성동(金成東) 원장은 “지난해 수능은 난이도 조정에 실패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올 수능이 어려웠다고 해서 지난해와 단순 비교해서는 안된다”면서 “수험생의 성적분포가 정상곡선을 그리는 예년으로 돌아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육ㆍ입시전문가들은 “이번 수능이 고득점 동점자가 속출한 지난해와 달리 변별력을 나름대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긴 하지만 난이도를 너무 급격하게 높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반응은 더욱 냉소적이다. 서울 휘문고 김찬일(金燦一) 교사는 “수능난이도가 극단적으로 춤을 추면 일선학교의 진학자료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다”면서 “지난해 수능이 너무 쉬웠다고 해도 점진적으로 어렵게 출제해야지 한번에 이를 만회하려다 보니 혼란이 생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참신한’ 문제 논란도
출제당국이 자랑한 '참신하고 새로운 유형의 문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실제로 이번 수능에서는 수험생들에게 아주 생소한 새로운 유형의 문제와,단순 암기가 아닌 통합교과 학습을 토대로 한 고도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일부 문제는 학원강사와 교사들 조차 쩔쩔맬 정도였으니 수험생들이 느낀 체감 난이도를 미뤄 짐작할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학력 저하 현상이 심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현 고3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평소 거의 접해보지 못한 뜻밖의 문제를 받아 들고 당황한 나머지 제 실력조차 발휘하지 못했다. 서울 H고 김모 교사는 "새롭고 참신한 문제를 내는 것도 좋지만 교육현장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감안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고려대 박도순 교수는 "사고력과 응용력을 요구하는 유형의 문제를 많이 출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며 "하지만 수능이 교육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수험생의 평균점수가 40점 이상 대폭 떨어진다면 난이도 조정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박 교수는 앞으로 난이도논란을 최소화하기위해서는 ▲미국과 유럽처럼 원점수 보다표준점수 활용을 일반화하고 ▲출제위원에 교사참여를 대폭 확대할 것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김성동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주관한 김성동(金成東ㆍ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8일 “수능 등급제가 도입됨에 따라 정상분포 곡선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난이도를 높일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전국 유일의 대입시험인수능은 매년 학생의 학력수준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해서는 안되고 ‘항상성’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2003학년도 수능시험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출제할 방침임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_일부에서 난이도 조정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아직은 모른다. 기다려 보자.”
_지난해와 비교해 ‘널뛰기식’ 시험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단순히 작년 수능 결과와 단순 비교해서 보면 안된다. 출제당국이 지난해 수능 난이도 조정에 실패했다고 이미 인정하지 않았느냐. 원래 궤도로 돌아갔다고 보면 큰 문제가 없다.”
_‘어려운 수능’에 대한 수험생과 학부모의 반발이 심하다.
“시험은 상대적이다.내가 어려우면 다른 학생도 어렵다. 수능 도입 첫해인 1994년 시험을 두 차례 치렀는데, 1차시험 출제위원의 80%가 2차시험 출제에 참여했다.하지만 두 번째 평균점수가 30점 가량 높았다. 난이도 조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_생소한 문제가 많아 수험생들이 곤욕을 치렀는데.
“기계적ㆍ반복적 암기,학습의 결과로 기억을 되살려 정답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알고 있는 사실과 개념 등을 복합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문제 유형은 어렵게 느껴지겠지만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취지는 좋지만 일선 교육현장 분위기와 동떨어진 것은 아닌가.
“교실에서 수업할 때 더 이상 암기위주로 해서는 안된다. 토론, 조사, 분류, 분석하는 등 학생의 학습활동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 (이번 수능시험은) 학교 교실의 수업방향과 학생의 학습방향을 창의력 신장으로 유도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변별력 확보" 대학들은 긍정반응
지난해 ‘수능점수 인플레’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대학 입시관계자들은 어려운 수능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대학 관계자들은 고교교육의 입시학원화와 대학 서열화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동안 수능의 변별력 약화와 학력 저하 문제를 지적하며 수능Ⅱ 도입을 주장해온 서울대 유영제(劉永濟) 입학관리본부장은 “변별력 강화라는 점에서 수능이 지나치게 쉬운 것보다는 이번 수능이 나을 것”이라며 “그러나 급격한 난이도 변동은 대학의 입시정책과 고교 입시지도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는만큼 일정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김승권(金勝權) 입학관리실장과 이화여대 조지형(趙志衡) 입학부처장도 각각 “지난해지나치게 쉬운 수능 때문에 입학생의 학력 수준이 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수능이 일정한 변별력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능Ⅱ를 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수능은 기초학력 평가와 변별력 평가라는 두 가지기능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것으로 보인다”며 난이도 향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처음 도입되는 수능등급제의 취지와 달리 고교 재학생들이 수능에만 매달려 결국 고교 교육이 점수따기식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연세대 김하수(金河秀) 입학처장), “수능이 너무 어려우면 상위권 대학의 서열화만 부추기는 결과가 될 것”(성균관대 박재완(朴宰完) 입학처장)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수능 영향력 더 커져 새 대입전략 수립해야
올해 수능시험 점수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대입 판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점수 하락에따른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 예상 점수에 따른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대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입시기관 오늘 임시지원표 발표
8일 일선 학교 가채점 결과, 올 수능점수는 1998학년도와 1999학년도 수능시험 점수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입시전문기관들도 가채점 결과와 98, 99학년도 당시 지원상황을 비교, 9일 점수대별 분석 및 임시 지원표를 내놓는다.
따라서 이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어림잡고 대입전략을 짜도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입시기관에 따르면 상위 3% 점수는 인문 360.9점(99)344.2점(98), 자연 367점(99) 348.2점(98), 상위 10%는 99학년도의 경우 인문 330점, 자연 300점이고 98학년도는이보다 30점 정도씩 낮았다.
360점 이상 고득점자는 2만9,500명(99)과 1만400여명(98), 300점 이상은 20만3,400명과11만800명이었다.
99학년도 지원가능 점수는 ▦서울대와 고려대ㆍ연세대 상위권 학과 368점 내외 ▦서울 중상위권 대학330점 이상 ▦4년제 대학 230점 이상이었고, 98학년도는 ▦서울대와 연ㆍ고대 인기학과 365점 ▦연ㆍ고대 일반학과 340점 이상 ▦수도권대학 250~285점 등이었다.
▽수능 영향력 한층 커져
수능 변별력이 커지면서 상위권 학생들은 수능 점수가 사실상 당락을 가를 전망이다. 엇비슷한 점수대의 수험생이 많이 몰린 중ㆍ하위권에서도 수능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모집군이나 모집단위 별로 차이가 있지만 올 정시모집에서 수능을 70% 이상 반영하는 대학은 33개,60~69% 반영은 70개 대학에 이른다. 미반영 대학은 전국적으로 10여 개에 불과하다. 수능점수가 낮은 수험생이 학생부만으로 노려볼 만한 틈새도없다는 뜻이다.
특히 서울대 등 43개 영역별 반영 대학이나 연ㆍ고대 등 47개 영역별 가중치 부여 대학에서 수능의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고려대 인문계는 수리ㆍ외국어에, 자연계는 수리ㆍ과학탐구에 50%의 가중치를 부여하고, 정원의30%를 수능만으로 뽑는 연세대는 계열별로 50%의 가중치를 준다. 수능 점수차가 더 확대되고 수능의 변별력이 그만큼 커진다는 이야기다.
▽재수생ㆍ특목고생 돌풍 예고
재수생 수가 7만 여 명 가까이 줄어 재수생 돌풍은 없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어려운 수능으로 재수생들이 10점 안팎의 이익을 봤다. 특수목적고 학생들도 높아진 난이도의 피해를 덜 받았다.
대성학원 이영덕(李永德) 평가실장은 “상위권은 상대적으로 점수가 조금 줄고, 중ㆍ하위권으로 갈 수록 점수 하락폭이 더 커졌기 때문”이라면서 “상위권 대학 진학 시 재수생과 특목고 변수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차지원 효과는 유보적
최근 몇 년간 위세를 떨친 교차지원의 영향은 내달 3일 점수발표 후에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전망이다.인문계와 자연계 중 누가 더 큰 타격을 받았느냐에 대해 ‘점수하락 폭이 비슷하다’(대성ㆍ종로학원)는 전망과 ‘인문계가 5~10점까지 더 떨어진다’(중앙교육,고려학원)는 예상이 맞서고, 일선 학교 가채점 결과도 들쭉날쭉이기 때문이다.
인문계 점수하락 폭이 더 크다면 교차지원 효과는 크게 상쇄될 전망이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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