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7일 발표한 ‘중국의한인 처형 사건’ 관련 감사결과와 재발방지 대책은 예상했던 대로 졸속이었다.국민에게 사과한다는 취지로 한승수(韓昇洙) 외교부 장관이 직접 나선 이날 발표는‘망신 외교’의 몸통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재발방지 대책도‘전 공관직원의 영사화(領事化)’라는 선언적 의미 뿐이었다.
당장의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런 결과는 외교부 당국자들이최근 “이번 사건은 단순한 행정 실책이 빚어낸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예고됐었다. 재외국민 보호업무를 등한시 해왔던 그 동안의 외교행정 구조가 이 사건을 낳았다는 자성은 어디에서도 엿보이지 않았다.
▼감사 결과의 문제점
한 장관은 발표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된 외교부의 실책을 4가지로 종합했다.
1997년 9월 신모(41)씨 등이 체포된후 확인책무를 소홀히 한 점, 2000년 11월 옥사한 정모씨의 신원확인이 태만하게 처리된 점, 중국 현지의 신씨 관련 보도에 대해 보고를 소홀히한 점, 현지 공관의 문서관리 소홀로 혼선이 초래된 점 등이다.
언론에서 지적한 대목을 간추린 것이며, 모두가 현지 공관의 실책이다.
하지만 이는 내부 행정실수에 대한 지적이지, 중국과의 교섭 과정에서 일어난 ‘망신외교’의 핵심은 아니다.
외교부 수뇌부들이 현지로부터 무슨보고를 받아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중국 외교부에 대응하면서 어떤 입장을 견지했는지 등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즉 1일 중국 외교부가 통보 문건을제시한 뒤 외교부 본부가 현지 공관의 말만 믿고 짚을 것을 짚지 못한 채 대응을 서둘렀는지, 현지 공관에는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등은 전혀 알수 없다.
이에 따라 대통령까지 ‘그릇된유감’을 표명했던 이번 사건의 책임이 전ㆍ현직 주중대사, 장ㆍ차관 등 본부 관계자들은 제외한 채현장 실무자들에게만 돌아가는 선에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감사원 특감을 통해 외교부 자체 감사로 밝히지 못한 몸통을 찾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나온다. 한 외교 원로는 “외교부 자체 감사가 오히려 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고지적했다.
▼재발방지 대책의 문제점
이날 발표된 대책은 재외공관의 공관장 및 공관차석(공사)에게 영사 지휘감독 임무를 부여, 책임소재를 보다 분명히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전 세계 124개 공관 중 총영사가 없는 62개 공관의 공관장 또는 선임자에게 총영사의 임무를 맡겨 모든 공관이 24시간 영사업무 체제를 갖추도록 하겠다는 게 외교부의 약속이다. 기존 인력을 풀가동하겠다는 고육지책이지만 효력 여부는 미지수다.
공관 책임자들에게영사업무를 맡김으로써 정무 등 타 분야에서의 업무 공백도 우려된다. 인력 보강 대책도 행자부 등과 아무런 협의 없이 나온 것이어서 얼마나 실현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훼손된사건의 본질
외교적 차원에서 이 사안의 본질은 한국인 수감자들의 사망 사실에 대한 중국측의 통고 지연과 일부 수감자가 제기했던 수사과정에서의 중국측 가혹행위 의혹, 한국인 사망 후 중국측의 적절한 대응 등이다.
하지만 행정상의 실수를 저지른 우리측은 가혹행위의혹, 사망 후 대응 등에 관해 중국측에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하지 못했다.
우리측은 4일 한중 외무장관회담에서 사망통보 지연에 대한 중국측의 유감 표명을 들었지만 이는 문서누락에 따른 우리측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나온 것이어서 의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당하기만 하고실리나 명분에서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망신 외교’가 돼버린 것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통외통委,韓외교 질타
국회 통외통위는 7일 한승수(韓昇洙) 외교통상부 장관을 출석시켜 중국의 한국인 마약사범 처형파문을 질타하며 한 장관에게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을 촉구했다.
여야는“한국인이 사형된 사실을 몇 년 동안이나 몰랐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지만 문제가 된 뒤에 중국이 우리측에 통보도 안 했다는 식의 허위보고 일색이었다”(한나라당 서청원 ㆍ徐淸源 의원)고 질타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장관직이 유엔총회의장직 수행에 부담이 된다면 차라리 의장직에 전념하라”(장성민ㆍ張誠珉의원)고 ‘장관 책임론’에 가세했다.
이번 사태가 한 장관이 유엔총회의장을 겸직, 장기간 외유하면서 내부기강이 해이해진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 등은 “실무자 인책으로 덮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며“전ㆍ현직 주중대사, 전ㆍ현직 장관까지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회의는 오후 들어 정회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 의원들의 추궁에 몰린 김경근(金慶根)영사국장이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정부에) 유감표명을 한 것은 잘 된 일”이라고 답변한 게 발단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일제히 “허위보고를 근거로한 대통령의 유감표명이 국가적 망신이지 어떻게 잘 된 일이냐”면서 “이런 식의 회의는 필요도 없다”고 정회를 요구했다.
통상 야당의 목소리가 커지면 정부 편을 들던 여당 의원들도 이날 만큼은 야당과 별차이가 없었다.
민주당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이번 사건은 외교부의 거듭된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인해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외교적 실수까지 초래했다”며“외교부 자체 감사로는 안되고 감사원이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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