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의 실책이 거듭되는 것은 외교관들의 경쟁력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경쟁력 상실의 원인은 외교관들의 실력 저하와 나눠먹기식 인사구조 때문이다.
올 2월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 조약 파문은 단적인 예다. 외교부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전에 국제사회에서 언급되어 온 ‘ABM 보존 강화’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 대미 갈등을 자초했다. 미행정부 교체에 따른 환경변화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외교의 사활이 걸린 안보분야에서조차 ‘기본기부족’으로 구멍이 뚫린 것이다.
실력저하는 부(部)내 경쟁이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8월 외교부 인사 후 아시아ㆍ태평양국의 4개 과장은 모두 외시 15기로 채워졌다.
외교정책을 좌우하는 지역ㆍ통상국장11명 중 8명이 같은 기수(9기)다. 발탁인사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이들의 재임기간은 1년을 넘지 못한다. 다음 기수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기수별 나눠먹기 관행이 온존하고 있다.
좋은 지역 공관과 그렇지 못한곳을 순환 근무하는 보직제도로는 전문성이 쌓일 리 없고, 지역전문가와 전략통의 배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재임 중 ‘날벼락’만맞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인력으로 외국의 쟁쟁한 외교관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그 결과는뻔하다. 엘리트 의식을 실력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게 우리 외교의 현 주소다.
외교관들조차 외무고시만 한번합격하면 누구나 공관장(대사)이 되는 현 풍토를 개탄한다. 한 외교관은 “어느 조직이나 자질과실력에서 앞서는 상위 10%, 그 반대의 하위 10%가 있게 마련인데, 외교부에서는 하위 10%는 존재하지 않는다”고꼬집는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관들의 책임감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재임중 좋은 일만 골라 하고, 싫은 일은 후임자에게 미룬다. 민원인을 상대하고 궂은 일만해야 하는 재외 영사업무는 기피1순위이고, 결국 이번에 ‘한인처형 사건’이 불거졌다.
‘ABM 파문’ 당시 외교 실무진의 과오가 자체 감사로 밝혀졌지만 감사결과는 묻혀버렸고, 외교부 내에서 어느 누구도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한인처형 사건이 터지자 당시 외교부 장관과 주중 대사를 지낸 홍순영(洪淳瑛) 통일부 장관은 “사건을 확대하지 말라. 이번 사건은 행정 미스(실책), 문서 미스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직관리도 낙제다. 최근 외교부현안의 절반은 일본과 중국을 담당하는 동북아 1ㆍ2과가 맡지만 2개과 사무인력은 13명에 불과하다.
외교부 1,400여명 중 1%도 안되는 인력에게일이 집중된 것이다. 현안도 처리하기 힘겨워 타부처와의 조율, 상대국 의회 관계 등은 엄두도 못 낸다. 기구조정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실제로이를 거론한 장ㆍ차관은 없다.
이러한 풍토지만 ‘밥그릇챙기기’ 경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학연ㆍ지연 등의 인맥은 물론, 같은 공관 재직경험조차 인사의잣대가 되고 있다.
얼마전 외교부내 실력자인 A모씨가 유럽 공관장으로나갈 당시 그 공관으로 지원이 몰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더욱이 최근에는 인사공모제를 통해 근무처를 지원할 수 있도록하는 제도가 생김에 따라 인사로비가 공개화하는 추세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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