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양국이 구렁이 담 넘어가는 자세로 중국의 한국인 처형 사건을 봉합하고 있어 사건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4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한중 외무장관 회담에서 양국은 "우호관계를 저해하지 않도록 원만히 수습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원만한 수습'은 양쪽의 잘못을 상계하고 묻어두자는 것이다. 중국측의 사망통보 지연과 한국측의 잘못된 상황판단을 서로 인정하는 선에서 외교적 절충이 이뤄진 듯하다.
이런 관측은 한승수 외교부장관의 발언에 의해 뒷받침된다.한 장관은 장자쉬안 외교부장에게 "한국인 마약사범 처리가 사형 집행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양국이 서로 부족한 점이 있었다"며 "이것을 교훈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 보다는 재발방지에 무게를 두자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인 사망통보를 지연시킨 중국 정부가 한국 내부의 행정착오를 이유로 유감을 표명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중국 당국은 마약사범 신모(41)씨의 사망 사실을 1개월 뒤에,정모(68)씨의 옥사 사실을 7개월 늦게 각각 통보했다.이는 '사망 후 지체 없이 해당국에 이를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한 빈 영사조약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인권과 관련해 미국 등과 외교적 마찰을 자주 겪는 중국측에 이번 사태에 대한 치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제발 저린'우리정부의 태도도 문제다.우리측 대사관 실수를 자인한 뒤에도 중국측의 잘못이 사건의 본질임을 거듭 강조해왔던 정부가 사건을 잠재우려는 중국측에 동조해 버린 것이다.이에 대해 당국자들은 "정부는 이미 리빈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중국측의 뒤늦은 통보에 항의하는 입장을 전한바 있어 굳이 이번 외무장관 회담에서 재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국측이 1일 2건의 문건 통보를 근거로 "한국측은 근거 없는 비난을 중단하기 바란다"며 한국 정부를 반박했던 과정을 되돌아보면,이번에 중국측의 잘못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중국에 너무 쉽게 면죄부를 줘버린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사태 재발을 막기위해서라도 정부는 정공법을 썼어야 한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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