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것'/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대형서점의 산더미 같은 책을 보고 질려버린 사람은 탄식할 것이다. 언제 저걸 다 읽나.
물론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누군가 그 책들을 읽고 아는 척 할 것을 생각하면 배가 아플 수는 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지식인 집단의 토론을 구경할 때도 비슷한 낙담을 할 수 있다. 그는 말할 것이다. “나는 무식해” 또는 “흥, 그래 잘났어”라고.
이책을 읽고 나면 그런 낙담이나 탄식이 줄어들 수도 있겠다.
‘교양_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원제 Bildung-Alles, Was Mann Wissen Muss).
이 한 권의 독서로 교양인 클럽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효율적인 투자인가.
750쪽에 이르는 두터운 부피에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쉽고 재미있으며,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대목을 골라 읽어도 좋게 쓰여졌기 때문이다.
함부르크대학 영어영문과 교수를 지낸 독일인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이 책은 1999년 독일에서 출판돼 권위 있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선정한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에서 100주 이상 3위 안에 들었던 책이다.
지은이가 독일 고등학생 대학생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이 책은 유럽의 역사, 문학, 언어,미술, 건축, 음악, 철학과 성 담론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유럽 문명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은 흔히 잡다한 사전식 나열에 그칠 위험이 있는데, 지은이는 자신의 시각으로 연대기적 흐름을 통합하고 걸러내는 명석함을 발휘하고 있다.
1부 지식, 2부 능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교양인이 되는 길을 다룬 2부 능력 편이다.
1부에서 습득한 지식들을 적절히 써먹는 법을 포함해 교양클럽의 게임 규칙과 교양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교양의 목표는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며 “교양은 우리 문화사의 기본적 특징들, 예컨대 철학과 학문의 기본 구상, 예술, 음악 그리고 문학의 대표작들에 대해서 통달하는 것”이다.
무식쟁이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교양을 늘릴 것이며, 교양 있는 대화에서 피할 금기는 무엇인지 말한다.
이를테면 온갖 학파가 난립하는 현대철학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지형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는 방법으로 그가 제시하는 최단 코스는 힘들더라도 어느 한 파의회원이 되는 것이다.
“한동안 이 갱단들을 살펴보고 마음에 가장 와 닿는 파를 하나 골라 그 무기창고를 점령하라.” 그것이 지은이가 내리는 지령이다.
위대한 지성의 무리를 무례하게도 갱단에 비유하는 저자의 익살로 짐작이 가겠지만, 이 책은 유머와 재치, 풍자와 비판으로 무장하고 있다.
“교양은 신앙공동체”라며 그가 써낸 다음 신앙고백문은 웃음을 자아낸다.
“저는 셰익스피어와 괴테 그리고 클래식 작품을 믿사오니 이것들은 하늘과 땅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빈센트 반 고흐가 신의 부름을 받은 초상화가임을 믿습니다. (중략)그는 자살을 시도했고 하늘에 올라 신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며 거기로부터 미술 전문가와 어설픈 딜레탕트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저는 문화의 힘을 믿사오며 천재들이 영원히 사는 것과 예술의 거룩한 성전과 교양인들이 교통하는 것과 인문주의의 영속하는 가치들을 믿습니다. 영원의 이름으로 아멘.”
이 재치 있는 문장에는 칼이 숨어 있다. 고흐가 미술전문가와 어설픈 딜레탕트를 심판하러 올 것이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는 ‘교양인 행세’라는 거드름을 경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교양은 “인간의 상호 이해를 즐겁게 해 주는 의사소통의 양식”일 뿐 그것이 “억압적표준, 불쾌한 과제, 경쟁의 형식, 심지어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려는 교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강박관념을 갖고 이 책을 읽는 것은 지은이의 의도가 아니다.
이 책은 즐거운 교양의 바다로 나아가는 항해지도 또는 나침반이다. 독자는 이책을 시작으로 더 넓은 교양의 세계를 탐험할 용기와 의욕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특별히 한국 독자들이 아쉽게 여길 것은, 유럽인의 교양이 아닌 한국인의 교양을 위한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이처럼 솜씨 좋게 포괄적으로 다룬 책은 왜 없을까 하는 점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반 교양이었을 수많은 책과 문헌, 인명과 고사성어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너무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전통의 단절을 절감하며 다리 놓는 일을 해줄 책과 저자를 기다린다. 인성기 옮김.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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