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N씨는 국내 축구계에서 명망있는 심판이었습니다. 체력과 판단력, 경기운영능력이 뛰어났던 그는 국제심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지금 미국 동부지역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한국축구를 떠나 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93년 어느 날 한국축구의 문제를 토론하다 한 후배심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도 로비해서 국제심판이 됐잖아….” 크리스천으로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 그에게 그 말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이민을 준비했습니다. 몇 개월 후 그는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사업을 하며 심판으로 활동했습니다.요즘 그가 심판복을 입고 경기장에 나타나면 선수들은 “오늘 좋은 경기 하겠다”며 엄지를 치켜들고 신뢰를 보낸답니다.
미국에서의 심판생활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불신과 부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속에서 심판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선수와 관중을 위해 어떻게 경기를 이끌어야 할지 그 묘미를 깨달은 것이지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국내 심판(축구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지난 9월 한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실망만 안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동안 국내 축구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며칠 전 미국의 N씨는 전화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나이 50 다 돼 심판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축구를 알만한 제 나이의 심판은 모두 퇴출되었더군요. 심판은 심판다워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축구를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심판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남아 한국심판계를 위해 계속 싸웠어야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올 시즌 프로축구 정규리그도 끝났습니다. 어느 해보다 심판사고도, 판정에 대한 제소도 많았습니다. 선수와 심판, 구단과 구단, 심판과 지도자의 불신은 더 깊어졌습니다. 심판노조의 설립, 판정실수 등 이런 저런 이유로 그라운드를 떠난 심판들도 많았습니다.
심판은 ‘그라운드의 법관’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선 사회적으로 존경받습니다. 말은 안했지만 N씨는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우리 축구엔 왜 존경받는 심판이 없을까요? 그 책임은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에 있을까요? 아니면 구단, 아니면 축구인에게 있을까요?”
유승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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