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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장학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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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장학금 이야기

입력
2001.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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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테러 참사에 이은 탄저균 기습과 아프간 공격으로 세계가 시끄럽다.신문 방송들은 날마다 끔찍한 뉴스를 전하고, 세상이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내에선 선거패배 후유증으로 여당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서로 네 탓이라고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정치혐오감을 부채질한다.

그러나 가끔 좋은 소식들도 있다. 신문 한구석에 자리잡은 1단짜리 기사 한 줄에서 위로 받는 날이 있다.

그렇게 받은 감동이 오랫동안 마음을 적셔주기도 한다. 최근엔 장학금을 내놓은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항구에서 배를 안내하는 도선사(導船士)로 일하다가 은퇴한 정희정(76)씨는 모교인 해양대학에 10억원을 내놓았는데, 자신이 국비로 공부했으니 당연히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대여장학금으로 공부한 명문대 졸업생들 중 대부분이 빌려간 장학금을 갚지 않는다는데, 그들은 정희정씨의 선행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모(思母)장학회를 만들었다는 7형제의 이야기도 아름답다.

안재홍(57)씨 형제들은 고향인 충북 제천의 초등학생 65명을 돕고 있는데, 자신은 낡은 옷을 기워 입으면서 어려운 이웃 아이들을 돕던 어머니 한우원 여사를 그리며 7형제가 장학금을 모았다고 한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정부가 내년 3월부터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유치원 교육비를 지급한다는 소식도 반갑다.

이 '정부장학금'을 받게 될 어린이는 내년에 만5살이 되는어린이의 20%인 13만4천명인데, 그들에게 월 10만원 내외의 교육비를 지원하면 어린이들의 능력개발과 부모들의 보육부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저소득층 어린이들에 대한 정부장학금은 미래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계층이동을 촉진하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다.

내가 아는 또 하나의 장학금을 자랑하고 싶다. 작년에 나란히 고교졸업 40주년을 맞았던 한 부부가 그들의 모교인 배재고와 이화여고 후배들을 위해 만든 장학금이 그것이다.

정승일(61) 장승자(60) 부부는 작년에 3억, 올해 2억을 내놓아 이 뜻 깊은 장학금을 키워가고 있다. 고교졸업 40주년 무렵에 부자가 되는 사람은 꽤 많겠지만, 이렇게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복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장학회에는 아내의 동창들과 남편의 동창들 그리고 두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어서 그 옛날 담을 사이에 두고 있던 두 학교 이야기가 꽃 피기도 한다.

지난 주에는 그들의 시골집에서 이사회가 열려 동산 가득히 자라는 나무들을 보았다. 오색 단풍이 들고 각종 열매를 맺은 아름다운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또 하나의 나무, 부부가 서로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졸업 40주년 선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IMF사태로 어려움을 겪을 때 '꼴찌'를 위한 장학금을 지방 고교에 보내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집이 어려워도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게 되지만,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등록금을 못 낼 경우 자칫 옆 길로 빠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대부분의 장학금은 '성적이 좋고 품행이 바르고 집안이 어려운 학생'을 돕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적이 좋지 않고 품행이 위태롭고 집안이 어려운 학생'을 돕는 장학금도 있어야 한다. 어떤 점에서는 그런 장학금이 더욱 절실하고, 돕는 보람이 더욱 클 수 있다.

'일류'만이 지원 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장학금이 더 많아지고 다양해져서 '꼴찌'를 위한 장학금이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세상이 왜 이리 척박하냐고 많은 사람들이 한탄할 때 그 척박한 땅에 묵묵히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희망'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 요란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착각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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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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