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등단한 신경림(66)시인은 곧 낙향해 10년 넘도록 시를 쓰지 않았다.등단 무렵 유행한 모더니즘 정서와 그의 시풍은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농사와 날품팔이로 전전하던 그는 71년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담은 ‘농무(農舞)’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작을 재개했다.
고단한 민중의 삶에서 시재(詩材)를 찾아냈고, 농민의 피로와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73년 그가 자비로 낸 ‘농무’는 2년 뒤 창작과 비평사의 ‘창비시선’ 1호로 출간됐다.
이 시집은 이 땅 풀뿌리 민중의 정서를 살아있는 입말로 형상화, 한국 현대시의 한 이정표가 됐다. 통쇄 50쇄를 찍었고 35만 부가 팔려나갔다.
시 ‘농무’에서 춤추는 농사꾼은 텅 빈운동장에서 소주를 마시며 “사는 것이 원통하다”고 한탄한다.
흥겨워야 할 춤사위는 슬프고 처절하다. 그것은 시인이 온몸으로 겪은 농촌의 현실이었다.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농무’ 부분)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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