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출판사를 들러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테이블 저편에 놓인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크라운배판의 커다란 판형이 시원스럽게 보였습니다.
프랑스 원서로, 이 편집자가 에이전시에서 빌려온 것이라 했습니다. 책 제목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프랑스 문학의 육필 원고들’ 쯤으로 번역되겠더군요. 무심코 책을 펼쳐 보았지요.
제목 그대로 아름다웠습니다. 14세기 샤를 드 오를레앙의 원고부터 1984년판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원고까지, 데카르트 파스칼 몽테스키외 발작 아폴리네르카뮈 등등, 700여 년 간 프랑스의 책 문화를 수놓은 110여명 문인ㆍ사상가의 육필 원고가 생생한 컬러 사진으로 실려 있고 해설과, 저자 초상 혹은 사진, 일러스트레이션이 더해져 있었습니다. 지난 해 나온 240여 페이지짜리 책이었지요.
또한 부럽고 안타까운 생각이 함께 들었습니다. 문화는 축적됩니다. 더구나 책문화는 원고와 책이라는 분명한 증거들로 살아남습니다.
우리의 원고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박물관에 남아있는 ‘친필’들이 있다구요?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의 원고마저 산일되고 없습니다.
최근 서울 남산에 있는 안기부장 공관이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ㆍ서울’로 탈바꿈했습니다. 단지 그 사실로 일회성 화젯거리로 지나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집에 채워넣을 내용이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책 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도정일 교수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막상 우리 실태를 알아보니, 한국에 도서관이 제대로 자리잡고 사람들이 책 찾아 읽는 마인드가 정착되는 데 100년은 걸리겠더라”는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 100년 동안 또 어떻게 변할지요. 앞에서 말한 프랑스 책처럼 ‘더할수 없이 아름다운 한국 문학의 육필 원고들’이란 책이 한국의 700년 책 문화 전통을 담고 나올수 있도록, 출판문화의 축적이 절실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 문화의 자랑이 되도록 말입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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