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전투기(F-X) 사업 등 대형무기도입 사업의 무더기 연기에 대해 국방부는 과다한 사업비와 협상지연 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면에는 정치적 고려와 군 수뇌부의 결단 부족이 근인으로 지적되고 있다.국방부가 올해 또는 내년에 착수키로 한 F-X, 대공미사일(SAM-X),육군 공격형 헬기(AH-X),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이지스급 한국형 구축함 (KDX-Ⅲ) 도입 계획은 총 10조원 대로 건군이래 최대의무기도입 사업이다.
이 중 KDX-Ⅲ 정도만 올해 구축함 설계에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협상이 계속 지연돼 사실상 올해 착수하기는 어려워졌다.
군관계자들은 이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계획대로 올 초에 기종과 무기 선정 결정이 났어야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 지연에다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조기 레임덕이 겹치면서 사업이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특히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내년에도 이들사업이 실행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년은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월드컵대회, 대통령 선거 등 정치일정이 잡혀 있어 정권과 군 수뇌부가 결단을 내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각종 비리의혹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현 정권은 내년 선거를 위해 각종 잡음을 최소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 사업 당 1조원 이상 드는 무기도입사업을 아무리 투명하게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야당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물고 들어갈 것이 명약관화한 만큼 차기 정권으로 넘겨 부담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군 수뇌부도 이 같은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군은 이미 김영삼(金泳三) 정권 시절 전력증강을 위한 율곡사업 비리로 군 전체가 위기에 빠진 호된 경험을 당한 적이 있다.
지금도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F-X 사업 등을 둘러싸고 외국 업체들의 로비 및 정치자금 제공설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무기도입 사업이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경우 군 전력 증강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으며, 각 군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 점이다.
공군은 “F-4팬텀 등 노후기종으로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F-X사업마저 차기정권으로 넘길 경우 동북아를 겨냥한 전략 공군 육성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국방부의 사업 연기에 반기를 들고 있다.
공군이 1·2일 역대참모총장을 초청, ‘정책자문회의’를 개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육군도 “국방부가 한국형 다목적 헬기(KMH)를 우선하려는 것은 육군의 숙원사업인 AH-X 도입사업을 폐기할 의도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군의한 고위 관계자는 “무기도입 사업이 연기되면 우리나라는 국제적 신인도 추락은 물론, 도입 비용의 추가 상승 등 부작용을 감내해야만 한다”며 “군수뇌부가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군의 발전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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