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의 지원결정으로 하이닉스 반도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일단 생존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최소한 내년말까지 버틸 수 있는 ‘1년분 산소’는 확보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그러나 채권단의 지원은 ▦반도체 가격회복 ▦기술적 경쟁력 유지 ▦차질없는 자구노력의 이행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현 시장여건상 이런 전제 요소들이 뜻대로 충족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특히 일부 은행들의 이탈로 금융권의 ‘하이닉스 리스크’가 몇몇 은행에 집중됨에 따라 하이닉스 정상화 프로그램이 실패할 경우 ‘3차공적자금’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불만 속 강행
지원을 거부하는 채권은행에 대한 매수청구 기회도 사실상 봉쇄됐고, 협의회일정도 쫓기듯 진행됐다.
일부 채권단에선 “테러나 다름없다”는 불만이 쏟아졌지만, 질질 끌다가는 환부(患部)만 커진다는 위기인식 아래 금융당국과 주채권은행은 지원안을 밀어붙였다.
이번 지원안으로 외환 산업 한빛 조흥 등 일부 은행만 채권단에 잔류하고 나머지 은행들은 청산가치에 따른 채권탕감과 함께 채권단에서 이탈하게 됐다.
잔류은행의 부담은 더욱 커졌지만, 향후 의사결정이 손쉬워졌다는 점에서 하이닉스엔 ‘약’이 될 수도 있다.
■지원ㆍ자구내용
시간을 끌수록 하이닉스의 회생비용은 커지는 만큼 채권단은 지원프로그램을 속전속결식으로 실행한다는 계획.
우선 내주 중 설비투자용 5,000억원을 집행하고, 1ㆍ2 금융권 채권에 대한 만기연장 및 금리인하에 들어갈 예정이다.
부채조정에 따른 금융비용 절감액만 4,000억원(올해 1조→내년 5,900억원)에 달한다. 4조원의 출자전환은 12일 주총을 거쳐 30일께 완료할 계획이다.
하이닉스도 반도체 설비의 중국매각 5,000억원, 외국업체의 지분참여 5,000억원 등 내년 중 1조7,150억원의 추가 자구안을 마련했다.
올해 자구액 중 미상환액 8,850억원과 경비절감 2,000억원, 유상증자 5,000억원 및 채권단 신규지원을 포함하면 내년 중 확보될 현금규모는 3조~4조원에 달하게 된다.
이런 프로그램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하이닉스는 현금흐름상 내년말엔 1조2,000억원의 자금잉여가 발생하고, 2005년엔 5조4,000억원까지 개선돼 ‘완전한 정상기업’으로 탈바꿈할 것이란 게 하이닉스와 채권단의 기대이다.
■첩첩산중의 장애물
하이닉스의 앞길이 ‘서류상 계산’대로 열릴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채권단 신규지원액이 3,000억원 가량 줄어든데다 유상증자 5,000억원도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부족분은 자구노력과 경비절감으로 메울 수 있다”고말했지만, 현재의 중국을 상대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반도체 라인매각 등 자구계획도 현재로선 조기성사를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은 반도체 기업으로서 하이닉스의 자생력이 문제다.
채권단은 “원가경쟁력에서 마이크론 인피니온에 앞서 있고 0.15㎛ 공정기술도 내년초엔 선두기업에 근접할 수 있다”고 평가했지만, 삼성전자는 이미 0.12㎛ 기술을 완료하고 20인치 웨이퍼 및 512메가 D램 양산체제로 돌입하는 등 8인치 웨이퍼와 128메가D램에 머물고 있는 하이닉스와의 격차를 더 넓히고 있다.
지난해 세계 D램 랭킹 3위에서 올해 4~5위권으로 밀려난 하이닉스로선 채권단 지원과자구, 경기회복의 3박자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한 ‘고토(故土)회복’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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