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베어스 경기를 봤습니다. 처음 본 야구장의 풍경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후 베어스 경기가 있는 날마다 야구장에 갔죠.20년을 응원해왔는데,28일 세 번째 우승하는 것을 지켜보며 마치 제가 선수라도 된 것처럼 기뻤습니다. 베어스가 앞으로 명문 구단의 전통을 이어가 제 아이와 함께 멋진경기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씨앗을 뿌리자
31일 두산 베어스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한 팬(아이디 Ro)의 우승 축하 메시지는 당초 우승후보에 꼽히지 못했던 두산이어떻게 최강 전력 삼성을 꺾고 우승했는지 짐작케 해준다.
두산이 1998년 4위, 99년 3위, 2000년 2위 등 한 계단씩 올라와 올 시즌우승하기까지는 그라운드 위의 전력 뿐 아니라 이 같은 열성 팬들의 응원이 ‘비밀병기’로 작용했다.
두산 베어스 팬 클럽이 만들어진 것은 96년. 82년 구단 창단과 동시에 프로 구단 가운데 처음으로 결성됐던 ‘리틀 베어스 클럽’이 모태가 됐다.
미래의 관중을 잡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만들어진 리틀 베어스 클럽은 첫 해 회원 18만명을 시작으로 85년 50만명에 육박하며 야구붐을 불러왔다.
프로구단가운데 처음으로 이천 전용구장을 만들고 2군을 창설한 것도 모두 씨앗을 뿌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길게 보는 두산의 전략은 김인식 감독의 지휘 스타일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김 감독은 정수근, 홍성흔 등 끼가 넘치는 신세대 선수들을일정한 틀에 넣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조계현, 김 호 등 고참 선수들이 갈 곳을 잃자 이들을 불러모아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은혜’를 입은 선수들은 당연히 몸을 사리지 않는 희생정신을 발휘했다.
두산 스카우트 팀장을 지냈던 구경백 경인방송 해설위원은 “두산 야구의 특징은 팀 성적의 변화에 따라 감독을 마구잡이로 교체하고 선수를 내보내지 않는 것”이라며 “자연히 코칭스태프나 선수들로서는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긴 호흡으로 멀리 보자
두산 그룹이 IMF 직전 미리 구조조정에 들어가 외환위기의 한파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도 “현금을 보유한 기업 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금 유동성(Cash Flow)의 원칙이 미래 경영의 지표임을 일찌감치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국내 기업은 엄청난 빚을 빌려서라도일단 매출액을 늘리고 보는데 급급한 ‘외형 성장’ 위주의 경영을 해왔다.
㈜두산 전략기획본부 이상하(李相河) 상무는 “무리한 성장보다는 작은 규모라도 돈을버는 장사를 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라며 “96년부터 모든 계열사 경영지표를 현금 유동성 원칙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의 창업지나 다름없는 OB 맥주 서울 영등포 공장과 1945년부터 그룹의 상징으로 알려진 을지로 사옥을 눈 딱 감고 매각한 것도 이 같은 원칙에서나온 것이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마케팅 전략은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로 연결된다. 두산은 96년 1월 국내기업에서는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두산이 채택한 연봉제는 못한 사람의 몫을 빼앗아 잘한 사람에게 주는 제로섬이 아니라 경영자 부담으로 잘한 사람에게 더 많은 몫을 주는 플러스섬 방식. 일한 만큼 보상 받는 연봉제의 도입은 구성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주)두산동아 최태경 사장은 "시장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직원들이 내가 주인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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