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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조폭''엽기' 흥행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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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조폭''엽기' 흥행하는 사회

입력
2001.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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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수입된 외화를 제치고 한국 영화가 흥행이 잘되는 현상이 보인다.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친구'에서 시작하여 '신라의 달밤'을 지나 '조폭마누라'와 '엽기적인그녀'에 이르기까지 온통 조직폭력배와 엽기적인 내용이 흥행작이란 점이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인터넷상에서 어느 고교생은 현재의 꿈에 대한 답으로 '훌륭한 폭력선생'이라고 적고 있다.

장난기가 다분하다고 보이지만 농담 속에 진담이 들어 있다고 읽히기도 한다. 또 인터넷 상에서 젊은 층이 즐겨 쓰는 표현 중에 엽기가 단연 압도적인 단어임은 상식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반 친구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학급에서 심한 구타를 당하고 가출한 고교생이 자신을 구타한 동급생을 수업중인 교실에서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잡힌 학생은 인터넷으로 영화 '친구'를 여러 차례 보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정도가 되면 TV에서 방영되던 슈퍼맨 흉내를 내며 날아보겠다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친 어린이들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예방차원에서 영화의 잔혹성을 줄이기 위해 검열을 강화하자거나 또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 관객이 나서야 한다는 측면의 문제가 아니다.

폭력이나 엽기가 관객, 그 중에도 젊은 관객을 빨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현실이 바로 폭력적이고 엽기적인 데서 상대적으로 통제력이 약한 청소년이 폭력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조폭'의 세계를 그린 영화가 인기몰이를 하는 데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 조직의 힘으로 폭력을 행사하고도 법망을 피하는 모습이 종종 드러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합법적 폭력에 대한 냉소가 불법적 '조폭'에 대한 심정적 공명으로 연결되는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공동체의 선을 염두에 두고공생을 도모하는 '된 사람'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과 부를 거머쥐는 '난 사람'이 되도록 부추기는 사회의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깔려있다.

자기 아이의 인성문제에는 관심이 없이, 시험문제 한 두 개 틀리는 것을 가지고 닦달해대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만점을 맞기 위해 컨닝을 하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을 둘러싼 경쟁이 심하다 보니 가림판을 성벽처럼 둘러치고 시험을 치르는 웃지 못할 광경이 보도되기도 한다.

육체노동을 천시하고, 과거제를 통해 지배층에 편입되는 것이 최고의 효도이고 동시에 자신의 영달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왕조 시대의 통념이 오늘날의 입시, 고시열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교육정책의 잦은 변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나 아이를 가진 부모 모두가 여전히 힘든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윗자리로,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니 몇 년 전부터 의무적으로 부과되어 비 교과과정에서 중요시되는 봉사활동이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수 있겠는가.

성적을 위해 억지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의 경험이 말이다. 기성세대의 기부금문화가 부끄러울 정도로 정착되지 않은 나라에서 자라나는 세대에게만 봉사정신을 요구하는 것 또한 무리이다.

수능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누구나 꺼리는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대접받는 사회가 된다면 단 하루에 치러지는 수능에 일생을 걸다시피 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조폭'이나 '엽기'만이 흥행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 것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윤혜영ㆍ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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