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무나 여성의 변신만큼 놀라운 것이 작가의 변모이다.끊임없는 실험으로 점철되는 것이 의식 있는 작가의 삶이겠지만 현실의 작가 대부분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매너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양화가 박광진(66ㆍ서울교대명예교수)씨의 변신은 놀랍기만 하다.
그의 요즘 그림을 접한 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그림, 진짜 당신이 그렸어?”
1992~94년 한국미술협회이사장을 지낸 박광진씨가 7일~20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02-734-0458)과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13번째 개인전을 연다.
77년 변화랑 초대전 이후 24년 만에 갖는 서울 전시회다. 선화랑에서는 소품 위주로 25점, 인사아트센터에서는 80호 이상 대작 위주로 14점을선보인다.
그의 가장 큰 변신은 기하학적인‘세로 줄 무늬’의 출현이다.
8~1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1959~61년)에서 3회 연속 특선을 따냈을 때의 작품이 극사실화였던 점을 떠올리면 정말 파격적인 변화다.
그는 70, 80년대에 제주도 유채꽃, 90년대에 억새와 갈대를 집중적으로 그린 사실주의 풍경화 작가였다.
이러한 변신은 전시작 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라산 주변의 억새 밭을 그린 ‘자연의 소리’(세로 130.3㎝, 가로 162.2㎝)는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 하나하나를 사실적으로 그린 다소 전형적인 풍경화.
이에 비해 또 다른 ‘자연의 소리’(세로 85㎝, 가로 85㎝)는 확연한 추상화다.
억새 줄기는 사라지고 간략한 녹색 선만이 길게 그리고 촘촘히 남았다. 작품 위쪽에 사실적인 산의 모습이 버티고 있는 것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작가는 “사물을 단순화하다 보니 추상이 드러난 것일 뿐 나는 여전히 구상작가”라며 “30여 년 동안 전국을 돌며 풍경만을 그렸던 만큼 이제는 변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길게 뻗은 선들의 착시효과에 대해서는 “옵티컬아트(Optical Arts)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평가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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