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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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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종교개혁

입력
2001.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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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31일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사 겸 신학교수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회 정문에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올렸다.루터 이전에도 영국의 위클리프나 보헤미아의 후스 같은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종교 개혁은 이 면죄부 관련항의문에서 촉발됐고, 그래서 루터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첫 공식적 항의자(프로테스탄트)로 기록되게 됐다.

면죄부란 중세 말기의 가톨릭 교회가 신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을 교황의 이름으로 증명한 문서다. 즉 일종의 속죄증명서다.

성당 건설과 포교에 드는 많은 비용을 교회는 면죄부판매로 충당하려 했는데, 이런 돈과 신앙의 교환을 교황 자신이 묵인하고 부추겼을 만큼 가톨릭 교회는 타락해 있었다.

당시 교황 레오10세를 비롯해 교회 지도자들은 루터의 이런 항의를 처음에는 대수롭지않게 여겼지만, 종교 개혁의 물결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여러 제후들 그리고 교황 사이의 이해 대립과 매개되며 이내 커다란 파고를 이루어 그 뒤두 세기동안 전 유럽을 삼켰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루터의 탐구로 시작된 이 개혁은 신앙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 제도 전반으로 번지며 전쟁과 혁명의 연료가 되었다.

오늘날, 신자수로 볼 때 기독교의 주류는 가톨릭이 아니라 루터에서 비롯된 개신교이고, 그 개신교 가운데 주류는 프랑스인장 칼뱅의 교리에 연원을 둔 여러 교파들이다.

유럽의 중세를 근대로 밀어낸 것은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이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가그 귀족적 바탕을 통해서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에게만 영향을 끼쳤다면, 종교 개혁은 민중의 마음을 중세의 미몽과 마술에서 깨워낸 더 근본적인 힘이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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