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국내외 현황과 사형수들의 삶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각종 통계에 따르면 1945년 해방 이후 현재까지 처형된 사람은 모두 1,600여명에 달한다. 지난 80년 이후만 해도 5공 시절인 80~87년에 70명, 6공 시절인 89~92년에 39명, 문민정부 시절인 94~97년에 57명이사형된 것으로 집계됐다.
근대 사법제도가 출범한 뒤 첫 사형은 동학혁명을 주도한혐의로 1895년 3월 법무아문 권설(權說)재판소에서 전봉준(全琫準)에게 내린 교수형이다. 정부수립 이후에는 격동의 정치사를 반영하듯 정치사범과 시국사범에게 사형선고가 집중됐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으로 59년 진보당 사건에 연루된 조봉암(曺奉岩)씨와 5ㆍ16 직후 혁명재판으로 사형당한 조용수(趙鏞壽) 민족일보 사장이 대표적 사례. 정치적 희생양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한강철교 폭파를 지휘했던 육군 공병감 최창식(崔昌植) 대령을 들수 있다.
당시 군 수뇌부는 철교 폭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쏟아지자 최 대령을 총살했으나 법원은 14년 뒤 무죄판결을 내림으로써 고인의 영혼을 달랬다.
사형수 출신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는 아직까지 사형집행이 없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사형을 선고받고 아직 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는 모두 51명이다.
가장 최근에 사형이 집행된 때는 YS정부 말기이던 97년 12월. 당시 사형제도 폐지를 둘러싸고 한창 논란이 빚어지던 상황에서 무려 23명의 사형수가 하루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사형폐지론자에게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세계적으로는 사형제 존치국이 108개국, 폐지국이 87개국으로 사형제 폐지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국제기구에 의한 사형제 폐지 움직임도 활발해 77년 12월 국제사면위원회가 사형제 반대를 골자로하는 ‘스톡홀름 선언’을 채택한 이후 89년 12월 유엔총회는 사형제 폐지를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토록 하는 국제인권규약(B규약) 제2선택의정서를 채택했다. 97년에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사형폐지 권고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사형수들은 행형법 관리절차에 따라 여타기결수들과 별 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오전 7시에 기상해 일조 점호를 통해 하루를 시작하며 일석점호 이후인 오후 10시 교도소내의 불이 모두 꺼진 이후 하루를 마감한다.
여유시간에는 운동이나 독서를 하거나 종교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이나 친지와의 면회절차 및 시간도 일반 기결수와 똑같다.
다만 일반 기결수들과 달리 노동을 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에게도 노역의 의무는 지워져 있으나 교도소측에서 실제로 사형수에게 일을 시키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것이 교정관계자의 전언.
또한 심리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심적 안정을 위해서 교도소 내 종교위원들과의 특별면담을 자주 갖는 것도 일반 재소자와 다르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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