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20세기초 의병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ㆍ1792~1868)를 기리는 ‘화서학회’가 최근 발족했다.조종업(충남대 명예교수)화서학회 회장은 29일 “지금은 항일 독립운동에 몸 바친 많은 학자와 애국지사들이 외면 받고 있는 세상”이라며 “화서와 독립운동의 연원을 이루는 그의 학문을 규명해 화서학의 진수를 파악하겠다”고 창립 취지를 밝혔다.
학회에는 현승종 전 국무총리, 최창규 성균관장, 김민수 고려대 명예교수, 정덕기 전 충남대 총장 등 학자와 관련 인사 100여명이 참여해 연구와 정기적인 학술활동을 펼치게 된다.
화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의병장인 면암(勉菴)최익현(崔益鉉)과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위정척사파 학자인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과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독립운동가 백범(白凡)김구(金九)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
화서 자신도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프랑스군의 침략에 항거하는 상소를 올리는등 위정척사파의 이론적 중추로서 활동했다.
제자들 중에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항일 의병ㆍ독립운동에 나서 순국한 이가 많았다.
그러나 그 동안 화서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소극적이어서 그의 학문과 정신은 제자들보다도 덜 알려져 있다.
화서는 호남의 기정진(奇正鎭ㆍ1798~1876), 영남의 이진상(李震相ㆍ1818~1886)과 함께 주리철학(主理哲學)의 3대가로 꼽히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16세 때 한성시에 합격했지만 과거에 부정이 있음을 알고 벼슬길을 단념하는 등 학자로서의 올곧음을 생명으로 여긴 선비였다.
병인양요 때의 ‘항거 상소’로 공조참판으로 승진한 화서는 곧바로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과 조세제도의 시정을 촉구하는 등 최초로 대원군의 정책에 반대해 배척 당하기도 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