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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어디로 가고 있을까

입력
2001.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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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성직자처럼 긴 옷을 걸치고 방독면을 쓰고 다니며, 노동자들은 작업장으로 들어가면서 살균실을 통과해야 한다. 빌딩은 에어필터를 통해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를 여과한다. 상업용빌딩을 광고할 때 가장 중요한 요건은 미생물 방어 장치이다."타임지의 과학 컬럼니스트 유진 린든은 3년 전 펴낸 '평범한 눈에 비친 미래(the Future in Plain Sight)'라는 책에서 2050년 뉴욕 맨하탄의 풍경을 기괴한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묘사했다.

뉴욕 사람들의 패션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21세기 초에 전세계를 휩쓴 악성 전염병의 영향이다.

세계인구 7억5천만명이 역병에 걸려 사망하고, 또 7억5천만명은 그 여파에 따른 사회 경제적 대혼돈으로 목숨을 잃게 되면서 사람 사는 모습이 이렇게 바뀌는 것이다.

린든이 이 삭막한 시나리오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였다.

즉 균형을 잃은 자연이 생태계를 대혼란에 빠뜨리고, 미생물이 창궐하는 세상을 암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과 워싱턴에서는 그가 묘사했던 2050년의 광경과 흡사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백악관 의사당 대법원 국무부 중앙정보국 신문사 방송사가 탄저균 우편의 공격을 받았다.

뉴스 화면은 방독면을 쓴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장갑을 끼고 기사를 쓴다"는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의 말 한마디에서 생물학 테러로 떠는 미국사회의 단면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아직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생물학 테러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미국으로서는 아프간 동굴에서 빈라덴을 찾아내는 일보다 새로운 테러에 대처하는 일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무기를 든 보이지 않는 적 앞에 미국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소련의 생물학 무기개발에 참여했다가 9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카나찬 알리베코브가 증언하는 탄저균 실험은 소름이 끼친다.

아랄해의 섬에서 기둥에 묶어놓은 원숭이를 상대로 비행기로 그가 개발한 탄저균을 뿌려 실험을 했는데 그 성능이 대단했다고 전하고 있다.

1979년에는 우랄산맥의 생물학무기공장에서 탄저균 기술자의 부주의로 누출사고가 발생해서 100여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처음 며칠동안은 바람방향을 따라 인근 공장 노동자들이 감염되어 죽었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황한 당국이 공장과 도로 및 숲에 물을 뿌려 닦아낸 것이 2차감염을 일으켜 사람들이 죽어갔다.에어로졸(공기중 미세한 물방울입자)에 포함된 탄저균을 주민들이 호흡하면서 감염됐던 것이다.

알리베코브는 미생물무기를 가루같이 안전하게 제조하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지만, 미국과 소련의 독점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20년간 소련은 리비아 이란 이라크 인도 큐바동유렵 과학자 40여명에게 생명공학과 분자생물학 연수과정을 제공했고,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생물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러시아에는 일자리를 잃은 수천명의 생물학무기 기술자들이 물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지금 벌어지는 생물학테러가 빈라덴이 지휘하는 알 카에다의 소행여부를 떠나 생물학 테러는 새로운 공포로 다가왔다.

탄저균뿐 아니라 흑사병 천연두 살모네라균 등 생물학 무기가 개발되고 백신에 대항할 수 있는 변종이 만들어지고 있다. 찬란한 생명공학의 부산물이다.

21세기를 생물학의 시대라며 떠들썩하게 맞았다.

생명공학이 식량뿐 아니라 우리의 신체를 자동차 부품같이 갈아치워 무병장수의 꿈을 실현한다는 꿈을 주었다.

그러나 뚜껑 열린 판도라 상자에서 나온 것은 생물학 무기의 공포다. 인간은 무병장수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백색가루의 공포로부터 탈출하려고 허둥대는 신세가 되었다.

/김종수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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