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영원한 나의 힘"“무대에서 피를 토하고 죽더라도 후회 없는 연기를 해보겠습니다. 이 작품만큼은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부끄럼 없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원로배우 장민호(76)씨가 직접 주연을 맡은 자서전적 연극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극단 신화ㆍ31일부터 11월 11일까지 동숭홀)에는 비장한 각오가 담겨 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하루 4시간씩 연습에 몰두하는 그는 후배들도 놀랄 만큼 왕성한 기량으로 54년 연기인생을 총결산하는 투혼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 연극평론가 유민영(단국대 대중문화대학원장) 교수가 주저 없이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꼽을 만큼 화려한 연기인생을 살아 왔다.
1946년 스물 둘의 나이에 혈혈단신 월남해 생계를위해 연극에 뛰어든 후 ‘햄릿’(51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55), ‘말괄량이 길들이기’(86), ‘오이디푸스왕’(90), 그리고 올해‘우루왕’까지 연극사의 뼈대를 이루어 온 작품 등 170여 편에서선 굵은 연기로 이름을 날렸다.
60년대에는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제작자로 상업적 성공도 거두었지만 ‘사람이 돈맛을 보면 변한다’며 이후 거의 대부분 연극에만 몰두했다.
제목의 ‘그래도’란첫 구절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작품에는 그의 신산한 인생굴곡이 고비고비 서려 있다.
10여 년 전 아들의 사업실패로 전재산을 날리고 그 충격으로 40여 일간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다. 당시 선ㆍ후배 연극인들의 따뜻한 격려와 위로가 잇따랐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이 사람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며 그가 입원 중인 서울중앙병원에 미국 의료진을 데려오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강한 정신력과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병마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원로극작가 이근삼(73ㆍ예술원 회원)씨가 40년간 우정의 선물로 장민호씨에게 헌정했다. 수년간의 자료조사와 대담을 거치고 픽션을 곁들여 정리한 것이다.
이씨는 1주일에 서너 번씩 연습장에 나가볼 정도로 지극한 열정과 우의를 보이고 있다. 윤주상, 김종구, 김재건 등 함께 출연하는 후배들도 대선배를 위해 출연료를 희사했다.
작품에서는 예전에 ‘파우스트’, ‘리어왕’ 등에서 장씨가 보여준 명장면들이 꿈과 환상을 넘나들며펼쳐진다.
“인생이란 하느님만이 아는 것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엄살 떨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밥 먹고 술 마시며 사는 것….”
홀로 사는 노배우 황포 노인(장민호 분)이 힘겨운 인생 말년을 지내며 깨달은 진리다. 연극계의 두 거목이 삶을 살아야 하는 모든 이에게 들려주는 은은한 덕담이기도 하다.
김영수 연출. 평일 오후7시 30분, 토ㆍ일요일 오후 3시. (02)923-2131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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