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한국성인병예방협회(회장 허갑범 세브란스 병원 내과ㆍ대통령 주치의)와 공동으로 매주 한 차례 건강면에 ‘성인병을 이기자’ 좌담을 연재합니다.국내 유수 종합병원의 관련 질환별 최고 전문의 4~5명이 참석해 국민 건강의 가장 큰 위협인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한 평소의 건강 관리와 질병에 대한 최신 정보, 환자및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 잘 못 알려진 치료법과 상식 등에 관해 풍부한 임상을 바탕으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전문의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토론은 날로 증가 추세에 있는 성인병을 예방하고 적절히 치료를 받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좌담회는 한국화이자가 후원합니다.≫
한 자리에 모인 5명의 전문의들은 국내 성인병 가운데 가장 폭발적으로 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병이 바로 당뇨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년 사이 무려 10배나 환자가 증가했다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라고 말했다.
손호영 교수가 “이런 속도로 환자가 늘다가는 10~20년 후 아마 큰 혼란이 올 것 같다”고 말하자, 이홍규 교수는 “이미 혼란은 시작됐다”고 소리를 높였다.
“게으르고 많이 먹는 사람이 당뇨병에 잘 걸린다”는 허갑범 교수의 말에 3시간 반에 걸친 좌담회가 끝나고 푸짐한 중국 요리가 나왔지만 모두 조금씩 남겼다.
-당뇨병이 가장 무서운 성인병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갑자기 우리경제가 압축 성장을 하면서 찾아온 빈곤과 풍요의 충돌현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6ㆍ25 직후 서울대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 수가 1년에 3명일 정도로 당뇨병은 희귀병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국내 30세 이상 인구의 10.7%를 차지할 정도로 흔합니다. 60대 이상에서는 20%가 넘지요.
-한 통계에 따르면 서울 목동의 30세 이상 주민의 1.5%가 매년 당뇨병에 새로 걸린답니다.
전체 인구의 50%가 당뇨병 환자인 미국의 피마인디언과 발병률이 비슷할 정도입니다.
-당뇨병은 발생해도 장기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게 문제 아닙니까. 소변이 잦아지고, 돌아서면 배고프고, 쉽게 피곤해지고, 체중이 빠지는 정도의 흔한 증상이거든요.
-진단은 쉬워요. 혈당 수치에 의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혈당 검사를 하는 것이지만 불가능한 일이죠.
미국에서는 45세 이상, 비만, 직계 중 당뇨병 환자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기적으로 혈당 검사를 받게 하지요. 직장에서 1년에한 번씩 건강검진을 잘 받으면 됩니다.
-일본 연구에 따르면 피하지방에 비해 복부 지방이 당뇨에 미치는 영향이 3~4배나 큽니다.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아도 배가 나오는 경우 당뇨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근경색증 환자도 복부 비만인 경우가 많지요.
-당뇨를 치료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깁니다. 눈이 멀고 피의 흐름이 나빠지고, 신장, 심장이 나빠집니다.
성인이 실명하는 가장 큰 이유가 당뇨병 때문이죠. 신부전으로 혈액투석하는 환자의 40%가 당뇨 때문입니다.
신부전도 혈당관리를 잘하면 혈액 투석시기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습니다.
-당뇨병이란 핏속에 불순물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몸 전신에 안 생기는 병이 없어 ‘병 백화점’이라고도 하죠. 악성 종양도 당뇨병 환자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당뇨 환자들이 예전보다 관리를 잘 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수준입니다.
선진국에서도 절반 정도가 당뇨인 줄도모르고 지낼 정도이니까요. 2억 7,000만 미국인 가운데 당뇨 환자가 1,600만 명이나 되지만 절반 가량은 당뇨인 줄 모른다고 해요.
우리나라는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죠. 당뇨병은 단일 질환으로 보지 않고 증후군으로 보아야 합니다.
특히 초기 혈당이 높지 않으면서 고혈압, 비만 등 여러가지 혈관 질환이 많지요.
-인슐린은 습관성이 있어 한 번 맞으면 평생 맞아야 한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죠.
인슐린을 맞으면 그나마 자기가 가진 췌장의 기능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도 해요.
그래서 인슐린을 처음부터 맞지 않으려고 하지요. 주사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의사들까지도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어요. 인슐린을 맞아 이익을 얻는 게 10이라고 한다면 부작용은 1~2 정도밖에 되지않습니다. 감전 사고가 난다고 전기를 쓰지 않는다면 우스운 일 아닌가요.
-우리 대학에서 지난 해 말 개원의사, 중간병원, 대형병원이 인슐린을 얼마나 처방하는지 조사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개원의들은 인슐린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중소병원은 15~20%, 대학병원의 경우 30%가 인슐린을 처방했습니다.
인슐린이 필요한 당뇨환자가 인슐린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판단할 수 있죠. 국내 환자 가운데 인슐린 처방이 필요한 환자는 20~30% 정도 됩니다.
-정상인의 경우 체중과 혈당이 인슐린의 적절한 분비와 효과에 의해 유지되는데 이것이 흐트러진 상태가 당뇨병입니다.
체중이 많이 나가고 피 속에 중성지방이 높은 상태에서 인슐린을 맞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먼저 운동과 식사요법부터 해야 합니다. 인슐린을 너무 많이 맞을 경우 생기는 부작용은 저혈당입니다.
의사가 권할 때는 대개 체중이 많이 떨어지든지 다른 것이 조절이 잘 안 될 때이지요.
-사실 주사를 매일 맞으라고 하면 환자는 황당해할 수밖에 없죠.
저는 환자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무대(stage)성 당뇨관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환자가 지금 왜 이렇게 돼야 하는가를 충분히 설명하지요.
당뇨 관리를 위해 어느 단계에 와 있고, 어떻게 할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줍니다. 의사로서 어떤 기법을 동원해서라도 환자가 인슐린을 왜 맞아야하는지 교육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혈당의 높고 낮음에 따라 처음 시작하는 무대가 다릅니다. 심하지 않은 사람은 식사요법과 운동요법을 병행하지요.
-당뇨병 환자는 게으르고 많이 먹는 사람 중에 많지요.
중간에 수시로 먹지 않으면 드러누워야 할 정도입니다. 물론 단 것을 먹으면 금방 좋아지기도 합니다. 안 먹으면 몸이 떨리죠.
혈당이 올라가면 허기가 지고 기운이 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스스로조절할 수가 없게 됩니다.
주사를 맞거나 식사 요법, 운동 요법을 하면 빨리 좋아집니다. 환자가 결심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달걀로 바위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 달만 계속해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처럼 인슐린 비의존성 당뇨병의 경우에는 식사요법과 운동을 하는 게 치료의 기본 원칙입니다.
-일정한 식사량, 영양소의 균형섭취, 식사 시간 등 세 가지가 중요하지요.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요. 처음 환자가 찾아오면 정규적인 식사만 이야기합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이야기하면, 의사는 환자에게 백전백패합니다.
-식사 습관을 바꾸는 것이 사실 어려운 일이죠. 단계별로 하나씩 바꾸어야 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년이되면, 당뇨병이 생기기 전 미리 식생활을 바꾸고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당뇨식은 치료식이 아니고 모든 이에게 추천되는 건강식입니다.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제에서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합니다.
-우리 식생활은 가족이 반찬 서너 가지를 식탁에 놓고 동시에 먹기 때문에 자신이 먹는 양과 종류를 정확히 모릅니다.
자신이 먹는 음식의 양을 알 수 있도록 식판으로 음식 문화를 정착시키면 당뇨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흰 쌀밥, 흰 밀가루 등 곡물을 너무 많이 먹는 게 문제입니다.
과일도 많이 먹으면 당뇨에 좋지 않지요. 토마토를 포함한 야채는 충분히 먹되 밥의 양은 줄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술도 적게 먹는 게 좋지요
-여름엔 수박이 문제고, 가을엔 감이 문제입니다. 꼭 계절마다 문제되는 과일이 있어요.
-운동을 열심히 하면 혈당이 조금 높아도 합병증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당뇨를 단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운동뿐입니다. 돈 들여 치료하지 말고 운동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운동은 원칙적으로 식후 30~40분 뒤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하는 게 좋습니다.
일주일에 4번 이상, 강도는 등에서 땀이 촉촉하게 나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좋습니다.
빨리 걷거나, 가볍게 뛴다든지 하는 움직이는 운동이 좋습니다. 특히 움직이는 것을 습관화 하라고권하고 싶습니다.
TV 리모콘만 사용하지 않아도 체중이 크게 줄어들 걸요. 생활 중에 움직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원래 운동은 유산소운동만 가리키지만, 당뇨에서는 칼로리를 소모하는 모든 움직임을 운동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당뇨 환자 가운데 운동을 하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에 당뇨 합병증이 온 환자가 달리기를 하면 혈관출혈이 생길 수 있지요. 고혈압 합병증이 온 경우도 조깅은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심장병, 고혈압, 신장병 등 당뇨 합병증이있는 사람은 운동하기 전 의사의 처방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갑자기 운동을 하면 무릎이 다칠 수 있습니다. 평지를 걷는 쉬운 운동부터 한 뒤 운동 강도를 높이는 게 좋습니다.
-당뇨를 고치기 위해서는 생활습관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동기 부여를 해야겠지요.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당뇨 치료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안 되면 당뇨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저(허갑범)는 환자가 오면 술 줄이고, 담배부터 끊으라고 말합니다. 그럴 의지가 없으면 내 환자 될 생각은 말라고 돌려 보내요.
-당뇨병을 단번에 완치시키는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유전자 치료, 인슐린 제조 세포 이식 등이 있지만 아직 연구 단계입니다. 완치법이 나올 때까지는 당뇨 환자들이 제발 섣부른 민간요법으로 몸을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제발 검증된 방법으로만 당뇨 치료에 나서라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약을 잘 선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뇨를 10~20년 앓은 사람은 최근 개발된 약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안전하지만 당뇨를 치료하는 선택의 폭이 꽤 넓어졌습니다. 옛날에는 당뇨 치료의 무기가 별로 없었지만 요즘은 효과 좋은 약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같은 지식을 당뇨 환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당뇨 환자의 80% 정도가 혈당을 떨어뜨리기 위해 민간요법을 쓴다고 합니다.
혈당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요. 민간 요법은 혈당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릴 수는 있지만 부작용이 무엇인 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요법은 절대로 쓰지말아야 합니다.
-당뇨병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은 연구가 되지 않아 자료가 없습니다. 정부가 이런 데 연구를 하도록 지원하지 않는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일부 제약회사가 증명되지 않은 민간 요법을 광고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언론도 과학적으로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뇨병 치료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1,200억 원을 쓰지만, 민간요법에는 10배 가까운 1조 원 정도를 쓴다고 합니다.
정부는 올바른 당뇨 치료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치료제들이 날뛰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쓸데없는 곳에 돈이 들어가는 것에 정부는 물론 의사도 책임을 느껴야겠지요. 정부가 하지 못하면 의사라도 나서서 막아야 합니다.
-가족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모자지간, 부자지간, 아니면 한 집안 형제가 모조리 당뇨병인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40세가 넘으면 1년에 한 번씩 혈당 검사를 하는 게 좋습니다.
-당뇨병은 증상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조기 진단은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혈당검사를 받으면 되니까요. 따라서 다른 병에 비해 조기 발견 확률은 훨씬 높은 편입니다.
당뇨병은 진짜 초기에 검사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기 발견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집니다. 검사라고 해야 직장에서 하는 신체검사밖에 없는 실정 아닙니까.
-당뇨 예방을 위해선 조기에 운동을 시작하고 식사를 조절하고 금주해야 해요. 뻔히 아는 얘기이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최근 유럽의 당뇨 예방 연구는 환자 예비군에 운동을 얼마나 시키느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운동시킨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 중 운동을 한 그룹의 당뇨 발병률이 60%나 줄었지요.
따라서 유럽에서는 당뇨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무조건 운동을 규칙적으로 시키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는 인디언들의 비만을 막기 위해 헬스클럽에 나가면 나중에 돈으로 돌려 주는 티켓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당뇨 치료비로 정부가 지불하는 약값보다는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지요.
-환절기가 되면 당뇨 환자들이 뇌졸중, 심장 경색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따라서 급격한 기온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해야 합니다.
-당뇨 환자는 가족의 지지와 도움이 없이는 관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뇨 환자의 치료를 위해 가족을 면담하기도 합니다.
환자는 열심히 당뇨관리에 나서는데 가족이 도움을 주지 않을 경우 환자는 소외감을 갖지요. 또 가족은 열심히 관심을 기울이는데, 환자가 게으를 경우 환자 가족은 분노하게 됩니다. 환자와 가족과 공동작전이 필요합니다.
허갑범(연세대 세브란스 병원ㆍ이하 내과)
이홍규(서울대 병원)
김광원(성균관대 서울삼성병원)
손호영(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유형준(한림대 한강성심병원)
■당뇨병이란
혈액 중 당분을 조절하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부족하거나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질환이다.
당뇨병은 대개 유전적으로 걸리기 쉬운 체질이 있지만 비만, 노화, 임신, 감염, 수술, 스트레스, 약물 남용 등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하게 된다.
당뇨병은 1형과 2형으로 크게 분류되는데 제1형 당뇨병(인슐린 의존성 혹은 소아 당뇨병)은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거나 분비가 저하돼 발생한다.
반면 제2형 당뇨병(인슐린 비의존성)은 췌장(이자)이 인슐린을 분비하지만 우리 몸이 분비된 인슐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해 혈당이 높아지는 것을 말하며 전체 당뇨병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밖에 임신 중에 발생하는 임신성 당뇨병과 췌장암 등으로 인한 당뇨병도 있다.
/ 사회=송영주차장 yjsong@hk.co.kr 정리=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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