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해병 특공대 200명을 아프가니스탄 지상전에 투입키로 하면서 19세기 양국간 악몽이 상기되고 있다. 이 같은 파병규모는 소수정예로, 막강한 해군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했던 대영제국에게 최초의 참패를 안겨준 1차 아프간전쟁(1838~42)과 관련, 관심을 끌고 있다.애덤 잉그램 영국 국방부 육군장관은 26일 의회에서 “해병대 제40특공대원 200명이 아프간 작전 투입을 위해 전함 피어리스호에 배치돼 ‘즉각 출동태세’를 유지할 것이며 다른 400명의 특공대원들은 귀국해 영국내에서 대기할 것”이라고 지상군 파병규모를 발표했다.
또 걸프해역에 항공모함 일러스트리어스호와 구축함 사우스앰턴, 프리깃함 콘월 등의 지원을 받는, 총 4,200명 규모의 유동병력을 배치했다.
이번에 투입될 제40특공대는 3,500명 규모의 해병 제3특공여단 소속으로 기습 및 적 후방작전, 산악 및 극한지역 전투를 수행하는 임무를 맡는 최정예부대다.
군사전문가들은 영국의 지상군 투입은 미국 주도의 아프간내 작전이 크게 확대된 신호라고 보고 있으나 영국군의 파병규모가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어 속전속결형 지상공격이 감행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 AFP는 아프간 전사들의 잔혹함과 강인성을 무시하고 침공했던 1838년의 참패의 전철을 밟지않기 위해 영국군이 더욱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27일 보도했다.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은 당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위해 대대적인 병력을 아프간에 파견,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영국은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2만명의 군인과 3만8,000명의 민간인을 보내 카불을 점령, 도스트 무하마드왕을 몰아내고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하지만 식민지배에 항거한 민병대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영국은 1842년 카불에서 인도로 철수에 나섰으나 눈 덮힌 험준한 산맥 속에서 아프간 군의 매복공격으로 4일만에 1만3,000명이 몰살하고 4,000명이 얼어죽는 대참패를 당했다. 대영제국이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무릎을 꿇은 최초의 전쟁이었다.
영국이 아프간 작전에서 미국 이상으로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역사적 배경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편 토니 블레어 총리는 테러 전쟁에 소극적인 사우디 아라비아를 설득하기 위해 31일 사우디 방문 길에 오른다.
정정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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