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주택 노조원 2만여명이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에 집결해 혹독한 추위와 싸우던 지난해 12월의 기억이 생생하다."강제적인 졸속 합병을 철회하라"는 그들의 요구는 이기심의 발로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정부의 불도저식 구조조정에 대한 반기라는 명분을 갖췄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10개월. 합병은행의 윤곽이 모두 드러나고 공식 출범일(11월1일)만을 앞둔 지금, 국민은행 노조는 또 한번의 '총궐기'를 선언했다. '합병 철회'라는 투쟁 목표도 여전히 변함 없이.
하지만 지난해 파업과 비교하면 분위기는 자못 다르다.
합병 반대를 외치며 투쟁에 동참했던 주택은행 노조원들은 오간 데 없고 국민은행 노조만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쟁의의 취지가 합병 철회라면서도 총궐기대회의 간판은 '국민은행 사수! 김정태 타도!'로 바뀌었다.
만약 합병은행장 자리를 주택은행이 아닌 국민은행에서 차지하게 됐다면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합병은행장이 주택은행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는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의 이야기만으로도 이번 쟁의의 '진짜'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하다.
노조 집행부는 합병은행 내에서 국민은행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 이상 대정부 투쟁, 대시민 홍보를 운운하며 국민들을 우롱해서는 안된다.
설사 국민은행 직원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중차대한 일이더라도 이는 안에서 풀어야 할 일이지 정부나 국민에게 호소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없다"고 외치던 노조가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 커녕 소모적인 쟁의만 되풀이하면서 스스로 합병 효과를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되새겨야 할 때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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