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 삼성감독에게 아홉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항상 똑같다."1993년 삼성과 맞붙었을 때였지. 우용득이 보통이 아니더라니까." 당시 삼성감독이던 우용득씨는 아마시절 한일은행에서 김감독 밑에서 선수로 뛰었다.
프로야구 담당기자로 10여년간 한국시리즈를 지켜봤지만 1993년 시리즈가 역대최고의 명승부전 이었다.
많은 야구인들도 이 같은 견해에 동의하고 빅게임이었던 만큼 뒷얘기도 무성했다. 특히 김응용 당시 해태감독은 단연 그 뒷얘기의 주인공이었다.
그 해 10월22일 대구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김감독이 3루심의 판정에 강력하게 어필하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삼성의 2루 주자 동봉철이 강기웅의 내야땅볼 때 3루까지 뛰어 세이프가 선언되자 김감독은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못된 판정"이라고 항의하며 3루심 황석중씨와 살벌한 장면을 연출했다.
기자가 보기에는 세이프를 선언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김감독의 어필에도 불구하고 해태는 이 경기에서 패배, 1승1무2패로 뒤져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김감독은 나머지 3경기를 모조리 이기고 통산 일곱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뒷심을 발휘했다.
당시 시리즈가 끝난 직후 김감독과 2시간 동안 독대할 기회가 있었다. "4차전에서 심판에게 어필했던 게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에 김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잘못된 판정이니까 그랬지"라고 받아넘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감독은 "정말 지는 줄 알았다. 4차전 때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한 것이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고 실토했다.
일종의 '전술'을 구사한 셈이었다. 삼성 관계자들은 지금도 그 얘기만 나오면 이를 간다. "김감독의고도의 심리전에 당했다"는 것이다.
김감독이 당시 얼마나 초조했는지를 알 수 있는 두 가지 일화가 있다.
4차전이 끝나고 김감독은 이례적으로 코칭스태프의 긴급미팅을 소집했다. 김감독은 대뜸 "방법이 없냐"고 한마디를 던졌다.
침묵이 흘렀다. 코치들 조차 평소 말붙이기 어려운 상대였다. 한참 뒤에 코치 한명이 "종범이를 뛰게 하십시오"라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김감독은 "내가 언제 뛰지 말라고 했나. 알아서 해"라며 미팅을 끝냈다. 이후 이종범은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 하나. 김감독은 5차전부터 유니폼 속에 누더기 같은 조끼를 걸쳐 입고 나왔다.
한일은행감독 시절 우승을 밥 먹듯 할 때 마다 입었던 조끼였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조끼를 꺼내 입었다는 것이다.
올해 삼성-두산간 한국시리즈에서 공교롭게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통산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는 김김독.
6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했다가 번번히 고배를 마신 삼성의 한을 김감독이 풀어 줄 수 있을 지 궁금해진다.
정연석 체육부 기자
y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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