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이토록 서정적인 푸른 바다 위에 이데올로기의 검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석방포로 이명준이 몸을 실은 중립국행 타고르호였다.
1960년 10월 원고지 600매 분량의 ‘광장’이 월간 ‘새벽’에 실렸다. 4ㆍ19혁명의 해였다.
이명준이 남한의 방종에 환멸을 느끼며 월북하던 때, 북한의 이념적 구속에 절망하던 순간, 사랑마저도 구원이 될 수 없었던 날들을 마주하면서 젊은이들은 소설 속 주인공과 함께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전까지의 갇혀진 이념의 틀을 벗어나 남과 북의 체제를 같은 무게로 평가한 것은 당시 청년들에게 낯선 충격이었다.
전쟁포로 이명준이 택한 것은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이었지만, 작가는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숨은 바위에 걸린 지식인 청년을 바다 속 깊이 내려보냈다.
정향사판과 민음사판을 거치면서 작가가 몇 번씩이나 고쳐 쓴 ‘광장’은 197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최인훈전집 1권으로 나왔다.
배가 그려진 붉은 표지 그림은 소설가 이승옥씨가 그린 것이다. 통쇄 127쇄를 찍었으며 지금까지 37만부가 팔렸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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