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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홍례문' 오늘 낙성식·일반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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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홍례문' 오늘 낙성식·일반공개

입력
2001.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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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략의 심장부였던 조선총독부에 밀려 사라진 경복궁 흥례문(興禮門)이 철거 85년 만에 그 자리에 복원됐다.흥례문뿐만 아니라 문 주변의 행각, 유화문(維和門), 기별청(奇別廳), 영제교(永濟橋), 어구(御溝), 어도(御道)등 흥례문 권역(517평, 사업비 233억 원)의 건물과 시설 복원이 완료돼 26일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왕궁의 위용과 풍수지리적 왕기(王氣)를 차단하려는 듯 일제는 1916년 흥례문을 철거하고 일대의 터에 조선총독부를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흥례문의 복원은 경복궁 복원 사업 중 가장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광화문과 근정문(勤政門)사이의 흥례문을 복원함으로써 경복궁은 ‘왕궁은 문이 3개’라는 조선 왕궁론의 통설을 만족시키며, 궁궐의 참모습을 갖추게 됐다.

앞으로 흥례문이 경복궁의 입구로 사용되는 것도 이같은 의미가 있다.

흥례문의 원래 이름은 홍례문(弘禮門)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창하면서 흥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청 고종 건륭(乾隆ㆍ1736~1795)의 이름(홍력ㆍ弘歷)자를 피하기 위해 개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흥례문 권역은 왕궁의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됐다. 이 곳을 지키는 근위병들은 왕과 신하의 출입을 안내하고, 궁내 정숙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또 주위 행각은 근정전에서 열린 대소 행사에 사용된 기구와 궁궐 수비를 위한 무기등을 보관하는 장소로도 이용됐다.

문화재청은 26일 흥례문 복원 낙성식을 갖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일대를 29일까지 무료 개장한다. 또 축하공연과 ‘경복궁 기획 사진전’(11월 20일까지)을 개최한다.

경복궁의 두 번째 문인 홍례문이 85년 만에 구 조선총독부 자리에 복원됐다. 홍례문은 2층 목조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돼 있는데 이 문이 복원됨에 따라 경복궁은 조선 왕궁의 옛모습을 되찾게 됐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경복궁 복원사업 현황

2009년 마무리되는 경복궁 복원 작업은 사업비만 1,789억 원에 이르는 20년 대역사(大役事)이다.

90년부터 침전(寢殿), 동궁(東宮), 홍례문, 태원전(太元殿), 광화문 권역 등 모두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침전, 동궁 권역에 이어 이번에 홍례문 권역의 복원이 마무리 됨에 따라 앞으로 2개 권역의 복원 작업만이 남게 됐다. 지금까지 복원한 궁궐 건축물은 모두 36동 1,663평(사업비 684억 원)이다.

왕과 왕비의 공간이었던 침전 권역은 95년 공사가 마무리됐다.

왕이 정사를 보았던 강녕전(康寧殿) 등 12개동(794평)을 복원했다. 왕세자와 세자비가 살았던 동궁 권역은 94~99년 복원작업을 했다. 자선당(資善堂) 등18개동(452평)이 옛 모습을 찾았다.

홍례문 권역을 복원함으로써 경복궁은 어느 정도 옛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선대 왕의 어진(임금의 화상)을 모셨던 태원전(太元殿 ㆍ1997~2003년)과 광화문 권역(2001~2009년)을 복원하기 위해 모두 1,105억 원의 사업비가 들어간다. 복원해야 할 건축물만도 57개동, 1,560평이다. 광화문도 고증에 따라 새롭게 복원할 예정이다.

2009년 복원 사업이 끝나면 경복궁은 129동(6,180평)의 궁궐 건축물을 갖추게 된다. 이것은 대원군 당시 330여동(약 1만 5,600여평)의 40%에 해당하는 것이다.

경복궁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경복궁 복원은 ‘북궐도형’ ‘조선고적도보’ ‘궁궐지’ 등 고서와 발굴조사 등을 근거로 이루어지고 있다.

설계도면은 없다. ‘궁궐지’에 건물의 규모와 목재의 크기만이 기록돼 있을 뿐이다. 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인 신응수(59)씨의 지휘 아래 지금까지 고증학자, 발굴요원, 도편수(우두머리 목수), 단청장, 소목장(가구제작 목수), 와공, 미장공 등 수백명이 작업에 참여했다.

목재는 소나무만 쓰기 때문에 기둥으로 쓰는 직경 90㎝ 이상의 나무는 북미산을 수입해 썼다. 이 때문에 감사원 조사를 받는 등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거목을 국내에서만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 받아 ‘문제없음’을 판정받았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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