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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광고가 물이라면 인간은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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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광고가 물이라면 인간은 물고기"

입력
2001.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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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제임스 트위첼 지음ㆍ김철호 옮김/청년사 발행탤런트 최진실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니까요”라는 광고 카피 한 구절로 스타가 됐다.

그로부터 십몇 년, 지금 세상에 최진실의 카피를 살짝 패러디해 보면 이렇다. “인간은 광고 하기 나름이라니까요.”

‘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는 세계 규모의 자본주의에서 가장 지배적인 문화가 된, 매스컴학의 창시자 마셜 맥루한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양식’이라고까지 불렀던 광고에 관한 이야기다. 흥미진진한내용, 기막히게 반짝이는 문체로 사유를 자극한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매일 5,000건 정도의 광고를 거의 매순간 어디를 가나 접하고 있다. 광고에서 도피할 수 있는 시간은 잠잘 때와 기도할 때뿐이다.”

저자 제임스 트위첼(55ㆍ미국 플로리다대 영문학ㆍ광고학 교수)은 ‘상업주의 광고는 물이고 우리는 물고기’라고 비유한다.

나아가 그는 “물고기에게 사고능력이 생긴다 해도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저자의 핵심적 의도가 있다. 20세기를 뒤흔들었던 20가지의 광고를 소개하고 분석하면서 그는 광고가 자본주의사회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드러내 보이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하지만 단순한 비판은 아니다. 그가 소개하는 광고들은 최소한 ‘대중예술의 조건을 성취하고 있는 선전들’로 한 세기의 트렌드를 주도한 것들이다.

그것을 파헤치면서 저자는 “비록 우리가 광고에 대해 사정없이 비난을 퍼붓고는 있지만, 광고가 우리를 타락시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고는 우리 자신이다”라고 말한다.

“상업주의는-또한 그에 수반된 문화는-끊임없이 전진하여 번성을 이룩할 뿐 아니라 성공을 쟁취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면서도, 상업주의를 견제하는 건실한 비판자의 모습이라는 것이 그의 글을 읽은 독후감이다.

이제까지의 몇몇 인용문을 보더라도 그의 문장은 마치 광고 카피처럼 명쾌하고 신랄하다. 광고뿐 아니라 고금의 문학작품을 넘나드는 유려한 글솜씨(좋은 번역도 큰 몫을 했다)가 읽는 이를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도록 만든다.

올해 서울대 심층면접 질문으로 ‘한국 사회에서 남녀평등은 가능한가’라는 것이 던져졌다. 이 문항에는 “여성이 남자의 엉덩이를 때리는 광고도 성희롱인가”라는 질문이 함께 제시됐다.

‘여성이 남자의 엉덩이를 때리는 광고’는 바로 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한 신용카드 회사의 광고다.

탤런트 고소영이 엉덩이를 흔들고 걸어가다가 길가 남녀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린다. 서울대의 문제는 이 광고와 현 시대의 핵심적 의제의 하나인 성희롱을 연결시켰다.

제임스 트위첼이 제시하고 있는 세계를 흔든 20가지 광고에 이 카드회사 광고의 원형이 된 것이 포함돼 있다.

바로 1960년대 말 레블론(Revlon)사가 자스민 향을 첨가한 향수 ‘찰리’를 내놓으면서 시작한 광고다.

직장 동료인 듯한 남녀 파트너가 걸어간다. 왼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여자의 긴머리, 등 뒤에서 살랑거리는 스카프는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듯하다. 역시 오른손에 서류가방을 든 남자의 엉덩이를 그녀의 오른손이 토닥이고있다.

레블론의 이 광고가 처음 나왔을 때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들은 “형편없는 취향”이라는 이유로 처음에 광고 게재를 거부했다고 트위첼은 소개한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이들에게‘형편없는 취향’은 바로 ‘지금 진행 중인 진짜 중요한 것’을 뜻할 수도 있다.

“당시 진행 중이었던 것은 바로 여성운동이었고 ‘찰리’는그 선두에 있었다”고 트위첼은 말한다. 비교하면 고소영의 광고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행 중인 성희롱의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새처럼 하늘을 날아 농구골대에 공을 집어넣고 있는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는 나이키광고. 이른바 ‘에어 조단(Air Jordan)’으로 알려진 이 신발광고 시리즈는 트위첼에 따르면 현대의 종교다.

르네상스기 교회 벽화, 인상주의 풍경화에서 나타나는 천상의 공기 띠가 의미하는 초월적 의미의 은총이 조단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하늘을 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류의 “내세가 아니라 현세에서 구원을 준다고 말하는, 과거는 없고 언제나 끝없는 장밋빛 미래만 있는 오늘의 소비문화와 그 전도사인 광고가 바로 현대의 종교”라며 그것은 1차원의 세계이자 1미크론 두께밖에 안되는 세계이며 속은 비고 겉만 화려한 세계라고 비판한다.

지금 한국의 슈퍼마켓이나 대형 할인점이면 어디나 내걸려 있는 ‘왕창폭탄 세일’ 혹은 ‘단 한번뿐인 기회’ 류 광고의 원조가 된 P. T. 바넘의 ‘지상 최대의 쇼’ 서커스 광고에서부터 시작해 저자는 코카콜라 폴크스바겐 말보로 애플 광고를 거쳐 에어 조단에 이르기까지의 20가지의 광고를이렇게 분석한다.

“우리는 모두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 20세기에는 그 펜이 몇몇 카피라이터의 손에 쥐어져 있기가 더 쉽다.”

“우리의 문화적 교양, 수백 년에 걸친 최고의 사고와 언어에 바치는 빛나는 은유들, 이 모든 것이 광고주의 몇 마디 말 덕분에 장송곡처럼 사라져버린 시대.”

이 책은 그 펜과 시대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즐거운 기회를 준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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