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장경제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무리한 보증성 정책들을 남발,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24일 주요 경제연구기관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증시부양, 벤처기업 활성화, 수출촉진 등 눈앞의 현안 해결에 급급, 민간의 실패까지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이른바 ‘보증 경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전반에 ‘도덕적 해이’를 낳고 각계의 무리한 손실분담 요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금융ㆍ세제ㆍ재정 등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다.
올들어 정부는 수출이 부진하거나 주가가 하락하고, 벤처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근본적 대책을 내놓는 대신 임기응변식 ‘보증 경제’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주가가 500선 이하로 하락하자 ‘장기주식투자자 육성’을 명분으로 주식투자 손실분을 세금에서 깎아주는 ‘손실보전형 증권저축’을 내놓았다가 국회 심의과정에서 폐기됐다.
재경부는 또 최근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벤처투자 손실의 50~80%를 보상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지난 6월에는 수출대책을 이유로 수출신용장이 없는 기업에도 10억원까지 수출보증을 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러한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보는 것 같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후유증이 우려되는 관치경제적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홍익대 전성인(全聖寅) 교수는 “수출이 안되고 주가가 안 오르는 것은 해외 여건이 불안하고 구조조정이 안됐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시장에 간여하는 것은 아직도 경제 관료들이 개발경제시대의 타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비판했다.
재경부 실무자들 역시 “외환위기 직후에나 사용될 법한 무리한 정책들이 진지한 검토 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리한 보증의 후유증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투신, 서울은행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매각과정에서 모든 외국자본이 정부에 과도한 ‘손실보전’을 요구, 협상이 지연되거나 매각자체가 물거품이 됐으며 기업ㆍ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손실을 입게 되는 이해관계자 집단의 손실보전 요구도 끊이질 않고 있다.
또한 방만한 조세감면 혜택을 폐지하겠다는 정부의 ‘2002년도 세제개편안’은 세액감면 장기증권저축의 도입 등 각종 세금감면 조치로 국회를 통과하기도 전에 이미 유명무실화했고, ‘모든 경제 문제를 시장원리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정부의 다짐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조철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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