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염모(24ㆍ여)씨는 얼마 전 모 여행사에 이력서를 내러 갔다가 기분만 상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지원서류를 받는 직원이 이력서를 들춰보지도 않고 “여자는 안 뽑을 예정이니 가져가라”고 퉁명스럽게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염씨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지원기회 조차 갖지 못하는 현실이 한스럽다”고 하소연했다.
■'21~26세, 병역필’만 가능
취업한파속에서 여성은 아예 뽑지 않거나 직종을 차별하는 불법 채용이 갈수록 심화해 여성 구직자들을 울리고 있다.
여성차별은 영세기업에서 이름을 들어도알 만한 대기업에 이르기 까지 기업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횡행해 여성의 사회진출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롯데음료는 최근 신입사원을 모집하면서 인터넷 홈페이지에 ‘서울, 21~26세. 병역필’이라는 글귀를 띄워 여성 구직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중견그룹에 속하는 일진그룹도 ‘총무ㆍ비서직 신입, 연봉 1,900. 남’이라고 채용조건을 못박아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상반기 전국 45개 일간지에 게재된 모집ㆍ채용 광고상의 성차별 실태에 대한 노동부 조사 결과에서도 불법 채용 공고가 185건에 달할 정도로 여성차별은‘일반적인 채용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표경희(表慶姬)이화여대 취업정보실장은 “여대생들의 서류전형 합격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며 “여대생들은 ‘면접이라도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 할 정도”라고 전했다.
■여성은 ‘용모단정, 경리직’
여성을 뽑는 업체들도 지원 가능 직종을 제한하기 일쑤여서 그나마 기회를 얻은 여성지원자들의 ‘취업 고통’은 여전하다.
생활정보지등의 구인란에서는 ‘관리사무직 0명, 남. 경리직 0명, 여성’ ‘용모단정 여성, 원만한 성격, 경쾌한 목소리 소유자 우대’ 등 조건을 내거는 구직광고 문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면접에서도 성차별적 질문으로 여성 구직자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8월 여대를 졸업한 이모(23)씨는 “한 업체 면접에서 ‘애인 있습니까?’‘차 심부름도 할 수 있겠습니까?’등 업무와 무관한 질문만 하는 통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성차별, 처벌은 솜방망이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는 ‘모집 채용 때 성별에 따라 고용기회를 주지 아니하거나, 채용시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에 따라 구별ㆍ배제ㆍ제한하는 경우’를 성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모두 현행 법규정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를 위반해도 500만원 이하 벌금형이 최고형이고, 그나마 단속당하는 경우도 드물어 이 규정은 솜방망이인 실정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손영주(孫榮珠)사무국장은 “선진국에서는 고용성차별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정부 자금 지원 등을 통해 성차별적 채용을 방지하고 있다”며 “당국은 구체적인 실태 파악부터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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