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 문인들의 홈페이지를 찾는다. 어떤 문인의 근황이 궁금해질 때다.작가의 내면에서 가장 생기있는 부분은 작품에서 드러날 터이므로 작품을 읽는 것이 작가를 아는 첩경이겠지만, 독자들은 작가의 주변이 궁금해질 때도 있다.
특히 신문기자 같은 세속적 독자는 더 그렇다. 물론 작가들은 약아서 홈페이지에서도 자신의 사적 영역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홈페이지는 본질적으로 장터처럼 열린 공간이어서 주인과 손님들 사이의 소통이 끊임 없이 이뤄지게 마련이고, 그래서 그 곳을 흘끗 들여다보면 작가의 근황이나 사적 동선을 조금은 짐작하게 된다.
소설가 이제하(李祭夏)씨의 홈페이지(http://www.zeha.pe.kr)에서
눈에 띄는 점은 거기 화랑이 있다는 것이다.
진열된 그림들은 이제하씨 자신의 작품이다. 이제하씨는 흔히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지칭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시로 이름을 널리 알린 시인이기도 하고,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근년에 자신이 직접 만든 노래로 콘서트를 연 적도 있다. 홈페이지의 화랑에 진열된 작품들은 자화상에서 말(馬) 그림들에 이르기까지 이제하씨의 회화 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작가게시판 안의 소묘/회화방에서도 그의 그림을 볼 수 있고, 연재소설 ‘낙뢰(落雷)’에도 그의 삽화가 붙어 있다.
말하자면 이제하씨의 홈페이지에서는 글과 그림이 서로 삼투하며 행복하게 공존한다.
오늘날 문학과 미술을 겸하는 예술가는 드물다. 문단과 화단 사이의 교류도 뜸하다. 그러나 예술사는 문단과 화단이 한 몸이었던 시절들을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라파엘 전파(前派)나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주의 그리고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가 그렇다.
동양에도 문인화의 전통 안에서는 문인이 더러 화가를 겸했다. 시인묵객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하씨의 존재는 그 자체로 고전적이다.
시인의 홈페이지에서 훔쳐 본 ‘뽕짝’이라는 좀 슬픈 시. “‘모래와 모래 사이’를/ ‘모래와 모래 사이에 바다가 있다’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장미와 장미 사이엔 가시가 있다’를/ ‘장미와 장미 사이엔 길이 있다’라고 고치면/ 책이 더 팔리지 않겠느냐고// 오늘도 뽕짝이 운다. 돈 보내라/ 죽은 별에서는/ 공갈치지 말라// 내 가야할 곳은/ 은자(隱者)의 뒤안길//그 바다 끝에/ 갈앉는/ 침묵// 이별의// 부산 정거장, 목포의// 눈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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