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라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는 분들이 많겠지만, 현재 정보통신 분야가 지금처럼 발전하기까지는 어려운 과정과 잊지 못할 일들이 많았다.우리나라에 컴퓨터 관련학과가 처음 도입된 것이 1971년도부터 1973년도 사이였다.
처음에는 전자계산학과라는 이름으로 겨우 4개 대학에 신설됐다. 나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후 68년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국내 한 기업체에 취직했었다.
어렵사리 회사에서 IBM 직원들과 함께 컴퓨터 관련 업무로 씨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3~4년을 근무하던 중 뜻밖의 제의를 받았다. 대학 2학년 시절 전기자기학을 강의하던 김기룡 교수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덴마크에서 연구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국내 최초로 전자계산학과를 만드신 분이었다. 그분은 만나자마자 갑자기 내 손을 부여잡으면서 "전자계산학과에서 강의를 좀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시는 것이었다.
당시 컴퓨터 관련 학과들이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을 가르칠 교수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때문에 신학기가 시작되면 늘 대학들은 강사를 '모시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곤 했다.
기업체에 취직해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갑자기 인생의 물줄기를 바꾸는 결정인지라 나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은사님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이 결정이야말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1974년부터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어려움도 겪었다. 초창기 컴퓨터 관련 학과들이 공과대학보다는 이과대학이나 경영대학 등으로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고, 신생 학과이다 보니 대학내에서도 발언권이 약했다.
또한 학회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문의 정립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교수들이 모여 회의를 열어도 전공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공통된 결론이 나기가 어려웠고 , 심지어는 논쟁 끝에 서로 얼굴을 붉히고 헤어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교수님들의 많은 노고로 우리나라의 컴퓨터관련 학문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내가 컴퓨터 관련 학문에 줄곧 몸을 담아 현재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우리나라 교육 정보화를 위한 일을 하게 된 것, 이 모두가 그때의 결정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내 마음을 움직였던 은사님의 열정적인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김영찬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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