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이 번역 시장을 바꾸어놓을 것인가?”15일 끝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이 물음을 미래의 세계 출판문화를 좌우할 5개의 대질문(Big Questions) 중 하나로 던졌습니다.
번역과 기술을 직접 연관시킬 정도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번역이 기술로 환원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번역은 언어행위이자 그 이전에 사상의 발현입니다. 다언어간 번역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그것은 ‘번안’일뿐이지, 번역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프랑스 번역가 발레리 라르보는 “번역은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라고 했다 합니다.
번역이란 단순히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표현을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는 원저자의 생각을, 한쪽에는 번역자의 생각을 얹어놓는 저울질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독일 철학자 슐레겔은 “번역은 번역되는 자 아니면 번역하는 자 둘 중에 하나는 죽게 되어 있는 사생결단의 결투”라고 비유했습니다.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우리 출판계가 번역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요즘 번역서가 나오는 행태를 보면 이건 ‘사생결단의 결투’이기는 커녕 저질 코메디라는 느낌입니다.
최근의 예만 볼까요. 소위 ‘테러 대전’으로 갖가지 관련서가 번역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기왕 한국 출판계의 고질인 노벨문학상 수상작 등 화제작의 졸속번역 경쟁은 저리가랄 정도입니다.
한 출판사 직원이 귀띔하는 말에 따르면 이런 책들은 우선 인터넷 등을 통해 졸속으로 선택된 뒤, 책 한 권을 여러 명 많게는 수십 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찢어발겨 원저에 대한 충분한 비교분석도 없이 한국말로 옮기고, 최종적으로는 비교적 이름이 난 번역자의 이름을 달고 출판된다고 하네요. 간판스타로 나선 유명 번역자는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번역서의 겨우 몇 페이지만 옮길뿐인 경우도 허다하답니다. 번역마저 ‘대필’되는 셈이지요.
이래서 책 몇 권은 팔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출판문화는 고사합니다. 프랑스문화의 발달은 중세문화와 라틴어문화에서 벗어난 12, 16세기의 각각 100여년에 걸친 ‘번역의 세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지요.
이런 전통이 있는 프랑스인들은 아름답기만 하고 원문에는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추악한미녀’라고 부른답니다. 우리 번역의 현실은 그것도 못되는 ‘추악한 장사꾼’의 모습은 아닌가요.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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