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중견 컴퓨터제조업체인 K사에 대해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적용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금융감독원과 거래은행들에 비상이 걸렸다.촉진법 적용 추진 소문이 퍼지면 가뜩이나 어려운 이 회사의 신인도가 크게 떨어지고, 일부 2금융권에서 채권행사 유예 기간이 시작되기전 서둘러 여신 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실징후 기업을 골라내는 과정에서 사전에 ‘명단’이 유출돼 해당 기업이 치명상을 입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난 달 15일 촉진법이 발효되면서 채권은행들은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 기업 900여개사에 대한 부실판정 작업에 본격 착수했지만 시행초기부터 곳곳에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촉진법은 기업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손실분담을 회피하는 무임승차자(Freerider)를 막는데 목적을 두고 있지만 허점이 많아 오히려 금융시장의 복병으로 작용하고 있다.
■ 사전 명단유출 가능성
채권은행들은 특정기업의 유동성 문제가 심각할 경우 채권단 50%의 동의를 얻어 금감원장에게 채권행사 유예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유예조치 이전에 이 같은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 2금융권 등 일부 금융기관이 서둘러 ‘얌체 채권회수’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은 갑작스런 자금난에 부딪쳐 촉진법 적용 전에 부도가 나거나 걷잡을 수 없는 회생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촉진법이 기업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방편이긴 하지만 일부 금융기관의 ‘나만 살고 보자’는 식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까지 막아줄 수는 없다.
■ 외국은행 채권이전 편법
최근 소시에 떼제네랄 등 9개 외국은행 국내지점이 하이닉스반도체 채권 4,600만달러(약600억원)에 대한 중도상환을 요청했다가 거부되자 촉진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채권을 해외 본점으로 이관한 뒤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을 했다.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경우 촉진법 적용 대상이지만 해외 본점으로 이관된 채권에 대해서는 손 쓸 수 없는 허점을 이용,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 것이다.
신규지원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하이닉스는 직격탄을 한 방 맞은 셈이다.
앞으로도 외국계 금융기관은 국내 금융기관과 달리 촉진법을 피해 언제든지 보유채권을 행사할 수 있어 두고두고 문제가 될 전망이다.
■ 연말 자금시장 복병 우려
채권은행들이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 기업 900여개사 를 대상으로 1차 부실판정 대상 선정에 나서면서 벌써부터 시장에는 ‘촉진법 (적용 대상)리스트’가 은밀하게 나돌고 있다. 루머가 돌면 멀쩡한 기업도 망할 수 있다.
가뜩이나 세계 경기 침체와 하이닉스반도체 처리 지연 등으로 연말 자금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는데 구멍 뚫린 촉진법이 기업의 숨통을 죄는 ‘저승사자’로 둔갑하지나 않을 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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