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재벌인 D그룹, G그룹도 채권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D투신 관계자), “채권발행도, 증자도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마저 여신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사채시장을 기웃거려 보지만 어음 할인금리가 25%까지 올랐다”(한 중견기업 관계자)경기침체장기화로 비우량 기업들의 디폴트(부도) 리스크가 커지면서 자금시장 경색조짐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연말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것이라는 견해가우세하지만, 신속인수제도 등으로 인위적으로 연장된 악성 회사채의 만기가 집중 도래하는 내년 상반기에는 자금시장 대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있다.
■회사채 시장 순상환으로 전환
안전자산선호로 비우량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급속히 치솟고 있다. 국고채와 ‘AA-’등급 회사채간 금리격차는 지난 6월말 1,17%포인트에서 9월말 1.53%포인트로수직 상승했다. ‘AA-’와 ‘BBB-’회사채간 격차도 4.11%포인트에서 4.19%포인트로 급등했다. 신용등급이 낮은기업은 그만큼 프리미엄을 더 얹어줘야 자금조달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설상가상으로기업들은 기관 투자가들의 회사채 매입기피로 신규 발행은 고사하고 기존 발행분을 갚기에 정신이 없다. 올들어 순발행 기조를 보였던 회사채 시장은8월(1조8,612억원)부터 순상환으로 전환했다. 갚는 것보다 발행이 많았던 것이 반대로 갚는 물량이 더 많은 상황으로 역전된 것이다.
한투증권신동준 연구원은 “삼성ㆍ롯데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회사채 거래실적이 거의 없다”며 “시장논리로만 본다면 자금경색이 불가피하다”고말했다.
■내년 상반기, 넘길 수 있을까
당장2~3개월내 많은 기업이 부도위기에 처하는 등의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12월중 회사채 만기도래분은 16조8,000억원(중도상환및 워크아웃ㆍ법정관리분 제외)에 달하지만 ▦구조조정촉진법 및 신속인수 대상 2조9,000억원 ▦투자적격 등급 12조9,000억원 등을 제외하면, 연말 자금시장의 뇌관은 1조원 수준이다. 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1조원 중 4,000억원은 자산유동화증권(ABS)발행 등 자체 프로그램을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고, 나머지는 프라이머리 CBO(발행시장 채권담보부 증권) 등으로 소화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문제는 내년 상반기다. 만기규모도 많지만 악성 회사채의 만기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내년 만기도래분 29조8,000억원(상반기 18조4,000억원)중에는▦신속인수대상 6개사의 3조4,000억원▦프라이머리 CBO에 편입된 투기등급채권만기분 6조6,000억원 등 10조원이 포함돼 있어,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경기악화로 특단의 정부대책이 없으면 상당수 기업이 부도위기에 내몰릴것이라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정부도 딜레마
그러나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은 제한적이다. 지난 7월 도입된 고수익고위험채권펀드는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정부는 10조원을 팔아 투기채3조원(투기채 30% 의무편입)을 소화한다는 구상이었지만, 3개월간 실적은 2조2,305억원에 불과했고 편입된 투기채도 운용사가 기존 보유분을돌린 것들이다.
또 하반기 14조원까지 발행할수 있다고 정부가 장담했던 프라이머리 CBO 발행실적도 8월 1조1,988억원(4건)에서 9월 2,328억원으로 급감했다. 투자적격기업이 후순위채인수부담을 우려, 상품 구성에 참여하지 않고 있고 신용보증기금도 부실을 우려, 보증확대에 인색했던 탓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틴 것은 금리 하향안정화로기업들이 상반기에 어느 정도 자금을 확보해뒀고, 신속인수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었던 덕택이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결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신속인수를재도입하거나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정부 출연금을 증액,보증여력을 획기적으로 확충시키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신속인수 재도입과 같은 인위적인 회사채 소화대책은 해외 투자자들의 비판으로 사실상 불가능하고, 신보에 대한 출연금증액도 재정악화로 그리 녹녹한 카드는 아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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