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다시는 안본다.’올 가을 서울에서 오페라를 본 사람들은 이런 맹세를 할지도 모르겠다.
대학 오페라나 소극장 오페라를 뺀 1,000석 이상 대극장 작품만 11편, 사상 유례없는 양적 풍요가 먹을 것 없는 잔치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볼만한 작품도 없지 않았지만, 상당수가 부실 공연으로 관객을 실망시켰다.
최악의 사례는 음악친구들이 제작한 ‘루치아’(9월 7~11일 한전아츠풀센터)다.
통나무 같이 뻣뻣한 가수, 앙상하게 비틀거리는 오케스트라, 답답하기 짝이 없는 조악한 무대, 소리를 먹어버리는 형편없는 극장 음향 의 끔찍한 조합이었던 이 공연은 관객 모독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작품이 올해 서울시의 무대공연 제작지원금 중 가장 많은 1억 1,500만원을 탔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관객이 불쌍하고, 세금이 아깝다.
‘춘향전’(9월 13~16일 세종문화회관), ‘리골레토’(9월 18~23일 한전아츠풀센터), ‘라보엠’(10월 9~13일, 예술의전당) 등 서울시로부터 4,000만~1억원을 지원받은 다른 작품들도 관객을 화나게 만들었다.
‘라보엠’은 누드모델과 스포츠카 등 음악외적 눈요기거리를 넣자는 제작자의 요구에 연출자가 반발해 사퇴하는 파행까지 겪었다.
이러한 사태는 최근 3~4년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이던 단체들이 서울시의 지원금을 노리고 공연을 급조했기 때문이다.
지원금이 오페라를 살리는 게 아니라 망치는 꼴이다. 서울시는 무얼 보고 이런 단체들에게 거액을 풀었을까. 서울시는 아무한테나 돈을 나눠주는 자선사업을 하는 모양이다.
분통 터지는 오페라의 행진 가운데 그나마 뜻밖의 소득은 강원오페라단의 ‘토스카’(9월 27~30일 세종문화회관)였다.
연출은 평범했지만, 인상적인 무대 디자인과 경험 많은 가수들의 호연 덕분에 모처럼 돈내고 보기에 아깝지 않은 공연이 됐다.
한편 세종문화회관이 공연 중인 ‘마술피리’(14~17일)는 모차르트 전문가의 연출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으나, 그리 좋은 무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진행이 매끄럽지 않고 일부 주역 가수의 연기도 미흡해서 김 빠지는 동화가 되어버렸다.
이제 남은 오페라는 ‘가면무도회’(31일~11월 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코지판투테’(25~28일 예술의전당), ‘피가로의 결혼’(11월 10~14일)세 편이다.
이중 예술의전당이 직접 제작하는 ‘가면무도회’는 올 가을 오페라 중 가장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젊고 실력있는 여성 연출가 이소영이 맡아 1년 반 전부터 준비해왔고, 작품에 맞는 주역을 찾느라 10회 이상 오디션을 실시했다.
이들 남은 작품이 오페라 관객들의 식어버린 마음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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