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은 ‘끼’와 ‘기(氣)’로 뭉쳐진 배우다. 감독도 그의 힘을 누르는데 주력한다. 부럽다.”(안성기)“과찬이다. 안 선배야 말로 한국 대표배우다. 처음 함께 작업을 해보니 그가 왜 그런 위치에 올랐는지를 알겠다.” (최민식)
임권택 감독의 새영화 ‘취화선’ 현장에서 서로에 대한 ‘덕담’이 낯 뜨거울 정도다.
그러나 그 덕담의 수위만큼 보이지 않는 연기의 경쟁 역시 만만찮다. ‘취화선’에서 안성기는 조선시대 개화파로 거지들에게 뭇매를 맞고 있는 장승업을 거두어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스승을 소개해주고, 평생 뒷바라지하는 장승업의 후원자.
“그림에서 어찌 세상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고” 김병문이 병석에 누워 이미 세상의 명성이 하늘에달한 장승업의 그림을 꾸짖는다.
“세상을 바꾸려는 선생님의 의지는 알고 있으나 그림은 그림일 뿐입니다.” 장승업의 예의바른, 그러나 똑 부러지는 반론.
이 장면에서 연기력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두 배우 모두 여러 차례 대사를 ‘씹었다’(틀렸다)는 후문. 임권택 감독은 “둘의 기 싸움이 만만찮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한다.
‘파이란’에서의 ‘강재’ 역할 이후 최민식의 연기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무사’에서 안성기는 주연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아도 주연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둘은 이전에는 만나보지 못한 호적수. 최민식이 “장승업은 면역성이 없는 아기같은 사람”이라고 분석을 하니, 안성기가 “좋은 말이다. 면역성 없는 아기라”하고 되낸다. 연기의 호적수란 결국은기쁜 상대이다.
80년대였다면, 안성기가 장승업을 연기하지 않았을까. “장승업이 임금을 그리러 궁에 들어갔다 도망쳤다는 얘기를 듣고 장승업을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그때였다면, 아마 안성기가….” 임 감독의 말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100년전 종로 저잣거리 그대로
“이 세트장에는 단 4개의 못이 쓰였다. 개막 행사를 알리는 프래카드를 걸기 위한 것이다.”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은 이렇게 오픈 세트를 자랑했다. 경기 남양주시 서울종합촬영소에 마련한 영화 ‘취화선’의 오픈 세트장은 우리 영화사의 새로운 기록으로 남을 듯하다.
“장승업이 살았던 시대는 국운이 쇠퇴하면서 사람들도 방황을 했던 시기다. 사람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저자거리. 그러나 너무 싸구려 냄새도 나지 않고, 우울한 시대상을 담을 것.”
이런 ‘추상적’이고도 까다로운 임권택 감독의 주문이 현실로 나타났다.
2,765평 부지에 기와집 26채와 초가집 25채가 들어선 오픈 세트장은 ‘세트’가 아니라, 완벽히 재현한 구한말의 서울 종로박물관이다.
MBC 미술센터가 3개월간, 연인원 5,000여명을 동원했다. 세트는 100년전 종로의 ‘피맛길’(양반 행차를 피해 서민들이 다니던 뒷길)과 장승업이 자란 중인 김병문의 집, 기생촌, 지전, 유기전 등이 빼곡히 들어선 저자거리 등으로 구성됐다.
소품만 2.5톤 트럭으로 30여대. 전라도 수몰 예정지에서 흙돌담을 그대로 옮겨오고, 전남 해남에서 소나무를 직송해 심었다.
가옥은 우리 전통 건축 양식을 살려 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파서 짜 맞추었다. “아파트 공사장 같았으나 그들은 모두 인부가 아니라 기능장들이라는 점이 달랐다.”(임권택 감독), “용인 민속촌 등 그 어느 곳에서도 이런 완벽한 시대를 구현한 곳은 없다. 완벽한 카메라 위킹이 가능한 오픈 세트를 보니 더럭 겁이 난다. 이런 완벽한 세트에서 작품을 잘 만들지 못하면모두 우리 탓이기 때문이다”(정일성 촬영감독).
오픈세트 제작에는 소품비 11억원을포함, 한국 영화사상 최고 금액인 22억원이 들었고, 영화진흥위원회가 6억6,000만원을 현물로 지원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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