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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대학시절 찾아갔던 농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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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대학시절 찾아갔던 농활

입력
2001.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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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산사태에 온힘 봉사 지금의 일욕심 밑바탕 돼도전하는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면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IT 기업의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때 교훈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리라.

대학 2학년 때인 1981년의 일이다. 당시 공학도로 사회봉사활동을 주 목적으로 하는 파인트리클럽(Pine Tree Club : PTC)이라는 연합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에서 동아리 여름 농촌활동을 준비했다.

1980년대 농활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다.

갈 때 마다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고 이후에도 계속 불려 다니면서 이것 저것 조사받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좌충우돌 끝에 7월말 드디어 우리는 경북 영덕군 강구라는 산골마을로 50명의 인원이 농활을 갈 수 있었다.

당시 영덕군 강구는 서울에서 10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완행열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도착한 그곳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기대감은 대단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서울 풋내기들이 험한 시골에 와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눈초리가 매섭게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그 때 장마로 인해 마을에 산사태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길이 유실되고 농작물 피해도 적지 않았다. 산골이라 거의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농활대 50명과 마을 주민들의 힘만으로 이 재난을 헤쳐 나가야 했다.

성장기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우리는 횃불까지 밝혀가며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다. 길을 덮은 나무를 잘라내고 움푹파인 골을 메우며 시간을 보냈다. 남녀 구분 없이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도 함께 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자연재해를 극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정해진 시간은 야속하게 다가왔다. 일주일간의 고생과 땀은 마지막 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막걸리 잔치로 이어졌다.

마을 이장님께선 내 손을 꼭 잡으시고 "큰 일 치렀다" 며 고맙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셨다. 그 이장님의 글썽거리는 눈물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 지사장으로 선임되어 사업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때 농활 당시 몇 달간 고생하며 준비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IT업계의 불황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끈질기게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때 기억 때문일 것이다.

정윤연

라드웨어코리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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