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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김인환 평론집 '기억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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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김인환 평론집 '기억의 계단'

입력
2001.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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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김환태 평론문학상의 제12회 수상자로 김인환(55ㆍ 고려대교수)씨가 선정됐다. 수상 평론집은 ‘기억의 계단’(민음사 발행)이다.상이라는 것이 흔히 그렇듯, 문학상도 늘 엄격한 공정성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시세(時勢)나문단의 알음알음이 알게 모르게 작용해 분수에 넘치는 상복을 누리는 문인이 있는가 하면, 운이 닿지 않아 자신의 업적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문인도 있다.

기자가 보기에 김인환씨는 뒤쪽에 속하는 문인이다. 상이라는 문학제도에 개재되는 이런저런 불합리한 관행들을 고려하더라도, 우리 문단이 이 뛰어난 평론가에게 건네온 눈길은 너무 인색해 보인다.

기자가 김인환씨를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저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역서를 통해서였다.

1980년대 초엔가 홍성사의 홍성 신서 가운데 하나로 나온 ‘언어학의 이해’의 역자가 김인환씨였다.

캐틀이라는 미국인이 쓴 이 책은 변형생성 문법 입문서다. 김인환씨가 ‘문학사상’ 10월호에 쓴 문학적 자서전을 보니, 그가 대학원에서 처음 전공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국어학이다. 외국의 언어학 책을 번역한것은 그 시기의 관심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기자는 그 뒤로 듬성듬성 김인환씨의 글을 따라 읽어 왔다. 그의 글에서 놀라운것은 관심의 폭이다.

언어학이나 역사학에 대한 관심이야 그의 동료 문학평론가들도 드물지 않게 공유하고 있겠지만, 김인환씨처럼 정신분석학과 정치경제학까지를 문학적 글쓰기에 수용하고 있는 평론가를 우리 문단에서 찾기는 힘들다.

문학평론가 성민엽씨는 김인환씨가 고 김현을 두고 발설한 ‘맥락의 독서’라는 말을 받아 김인환씨의 글쓰기를 ‘맥락의 글쓰기’라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 기자도 그 평가에 동의한다.

김인환씨가 맥락의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텍스트를 시간적ㆍ공간적 원근법 속에 적절히 배치할 수 있을 만큼 시야가 깊고 넓다는 뜻이겠다.

그에게는 또그 비범한 눈길이 간취해 낸 텍스트의 좌표들을 단정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솜씨까지 있다.

‘기억의 계단’에서도 그의 맥락읽기는 품이 크고 정교하다. 그 기록도 섬세하다.

최인훈을 시발점으로 이청준 최창학 조세희 김원우 이인성 최수철같은 작가들을 계열화하고 있는 ‘최인훈 소설의 계보’나, 시조와의 거리를 척도로 한국 현대시의 형식을 규정하고 김소월과 이상을 시형식의 두 극단에 배치한 뒤 현대시들의 좌표를 작성하는 ‘이상시의 계보’ 같은 글들이 그 예다. 김인환씨의 눈과 손이 부럽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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