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생각] '우리말 뿌리' 알고있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생각] '우리말 뿌리' 알고있나

입력
2001.10.13 00:00
0 0

우리는 한글에 대해서, 겨레말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제는 평범한 하루로 전락한 한글날을 되돌아보면서 이런 물음을 던져 본다말을 안다는 것은 사용할 줄 안다는 것과 같다. 한국인은 누구나 한국어를 사용하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어를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다. 한민족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한국어를 사용해 왔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은 천태만상이었다.

한글이 공용어로 자리잡은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이고, 순수한 한글만을 사용하자는 주장은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 야집단적 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화의 흐름은 이런 집단적운동에 제동을 걸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국한문 혼용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고개를 든 지 오래이다.

나는 이런 상반된 주장들 중 어느 한 편만을 옹호하고 싶지 않다.

옹호하자면 모두를 옹호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순 우리말의 가능성을 충분하고 복합적으로 실험해 본 시기는 없었다.

지식인들이 우리말에 담긴 잠재력을 길어내기 위해서 씨름한 것은 고작 반세기에 불과하다. 이런 사정 앞에서는 한글 전용론을 편들고 싶다. 지금 한글 전용론을 묵살한다면, 이는 수천 년 만에 겨우 찾아온 기회를 져버리는 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순 우리말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말이 외국어와 만남으로써 얻게 될 새로운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영어 공용론이나 국한문 혼용론은 많은 경우 경제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다. 협소한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나 세계라는 보다 큰 울타리안에 거주하기 위해서, 그 안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말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떠나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언어에서조차 동종교배는 폐단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과연 외국어를 모르면서 모국어를 충분히 알 수 있을까? 외국어를 통해서 비교의 대상이 될 때야 비로소 우리말은 그 장단점이나 숨겨진 잠재력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토착어를 파괴할 수도 있지만 그 중심에 새로운 가능성을 수태시킬 수도 있다. 우리말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에 끊임없이 이종교배가 일어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글 전용론 못지 않게 다른 종류의 주장도 쉽게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충하는 주장을 모두 끌어안으려면 각별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우리말을 사용하되 아직 잘 모르는 것처럼, 아직 더 배워야 하는 것처럼 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순된 언어사용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실제로 모르는 구석이 많기 때문일 수 있다.우리가 모르는 것은 특히 우리말의 뿌리다. 이는 우리나라에 변변한 고어사전 하나 없다는 것을 보면알 수 있다.

하늘, 땅, 멋있다, 있다 등과 같은 말들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이런 말들은 어떤 체험과 사연을 기억하고 있는가? 도대체 알고 싶어도 물을 곳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순수한 토착어를 체계적으로 응용하거나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무 엇보다 우리말의 기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외국말에 쉽게 휘둘리는 것도, 외국말에 적대적인 것도 모두 같은 이유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른바 자생적 담론이니 우리말로 철학하기니 하는 것도 이런 무지의 상태에선 공염불로 그치기 십상이다.

언젠가 외국에서 사상으로서의 한류가 흐를 날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말을 완전히 배운 연후에나 기대할 수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를 지배해 온 중국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의 범주들로부터 벗어나 그 범주들을 상대화해서 볼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 확실한 근거는 우리말에 담긴 기억, 아직 회상되지 못하고 있는 그 기억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